(특집)그날의 법난...현장증거로 말하다(불교신문 1994-05-14)   2008-10-30 (목)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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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그날의 법난...현장증거로 말하다

 

 경찰의 해명을 거짓으로 판정하기는 매우 쉽다. 사건 당시 목격자들이너무도 많을 뿐더러, 채증된 사진과 비디오테입등 증거자료가 분명하게 제시되고있기 때문이다.이것을 피해자측의 한낮 주장정도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목격자 숫자와 사건정황등을 참조할때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보여진다.특히 이 사건은 현재 조계종 스님과 불교신자들에 의해 고소 |
|고발이 계속되고 있어,사건을 판단할 주요한 증거자료를 전면 공개하는|
|것이 불교인들에게는 우선 필요하다.또한 경찰청의 일방적 사건해명이 |
|사건의 바른 판단보다는, 여론호도를 만들어낼 우려가 있다는 점도 |
|있다. 
| 따라서 사건 당시를 목격자 증언과 증빙자료로 재구성하게 됐다.특히 |
|주목해야될 점은, 사건 발생당시가 새벽 6시라는 특성때문에 목격자가 |
|피해자측인 범종추스님들과 가해자들인 전총무원 직원 및 이들 동원 |
|폭력배 밖에 없다. 그 외는 모두 경찰들뿐이다.그러나 경찰들 가해자의|
|폭행방조및 직무유기로 현재, 불교계가 고소고발을 진행하고 있어, |
|사실상 경찰은 중립적 입장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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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기록은 피해자쪽의 증언이라는 한계점이 있으나, 증언자의 |
|숫자가 워낙 많고 그들의증언이 일치하고 있어 신뢰도는 높다. 또 |
|증빙자료도 상황과 일치되고 있다.이 기록과 관련, 여타 증언과 반론이|
|있다면 [불교신문]은 책임있게 게제할것이다.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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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류1: |
| 3월29일 새벽 조계사 경내로 들어온 총무원측 청년 1백여명을 검거 |
|하지못한 것은 종로경찰서에서 112신고를 받고 즉시 출동했지만 미처 |
|도착하기도전에 이들이 범종추측의 세에 밀려 이미 도주한 상태였기 |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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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폭력배투숙부터 투입까지 전 과정을 알고 있었다. 목격자 진술을
보면 상황은 잘 드러난다.범종추 조직실장 자성스님은 28일 자정에 실천
승가회 사무실전화(744-1593)로 제보를 받았다.

제보내용은"지금 폭력배 2백여명이 종로2가 서울호텔등 호텔.여관에
나눠 투숙하고 있다. 폭력배 모집명령자는 ...이며, 경찰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기소중지자들이라서 경찰
비호없이는 오늘 이런곳에 대거 움직일 수 없다.

조계사에 들어가는 시간은 29일 새벽 6시30분 사이이다. 또 오늘은
지난번 서교호텔살인사건으로 폭력단속기간에 걸려있다"등이다.범종추
스님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KBS.MBC.SBS등 방송사 카메라기자에게
전화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일문스님)제보내용을 미리 알려줬다.


그리고 비디오 촬영기사(다보영상 김인기실장) 승가대 신문사 기자(지환
스님)를 현장에 배치했다. 이때 시간이 새벽4시 30분경이다. 그런 다음
조계사 후문(해탈문)에 도착했을때(새벽 6시경) 종로경찰서 정보과
유준형형사등 사복.정복 경찰관 6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차안에 6명
차앞에 3명 그림장면-1)이 장면은 도각스님(월간 해인 편집장) 현담스님
(현 불교신문 주간)등이 같이 목격했다.

유준형형사는 총무원을 수시로 출입해 얼굴을 익혀 누구나 쉽게 알수
있었다.종로서 형사들에게 자성스님이 말했다."폭력배 2백여명이 이 문을
통과해 6시~30분경 들어온다는 확실한 정보가 있으니 대비해 달라"이후
6시 20분경부터 폭력배가 해탈문으로 들어와 범종추스님들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들어온 통로는 앞서 그림설명처럼 형사들이 잠복하고 있던 길을 따라
온 것이며, 폭력배의 해탈문 진입시에는 전총무원 규정부 고중록계장이
지휘하고 있었다.(사진-2)


또 이 직후 고중록계장과 유준형형사가 같이 서있는 장면이 사진에
실렸다.(사진-1)사건당시 SBS와 한겨레신문 기자가 취재했으며, 건너편
한국일보 주차장에는 이미 경찰버스와 2백여명의 경찰병력이 있었다.

6시20분 이후 폭력사태는 난폭하게 벌어졌다. 6시30분경 범종추 자성
스님(당시 핸드마이크 들고 있었음)과 현담스님등이 대웅전 옆 처미밑
축대위에 서있던 어청수 종로서 정보과장 일행 5~6명을 발견, 이들에게
찾아가 요구했다.(그림장면-2)

"스님들이 폭력배 한테 맞고 있는데, 경찰이 보고만 있으면 되느냐,
경찰이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그러나 어청수정보과장 박영진정보계장
등은 고개를 돌리고 피해버렸다.

추후 어청수정보과장은 이 사건에 대해 "우루루 몰려 들어온 젊은이들이
범종추 지지 학생과 청년들인 줄 알았다"고밝혔다.(자성스님 증언)이날의

사태는 비디오테잎에 잘 담겨 있다. 짧은 머리, 우람한 덩치, 이단옆차기
모습 등 일반인도 폭력배로 구분하기 쉬웠다.

그러나 전문가들인 정보과 형사들이 폭력배를 학생으로 판단한 격이다.
이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될 수 없다.특히, 추후 밝혀졌지만, 경찰은
사건전날(28일) 만포정에서 구총무원 간부들과 회식을 갖었다. 참석자는
유형사와 고계장등이다.

이외에도 사건 2~3일 전부터 경찰과 같이 회식한 외상청구서가 총무원에
증거로 남아있다.(일간지 신문 보도, 근거 서류도 남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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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류2: |
| 같은날 오후 6시35분과 다음날인 30일 오전 2시50분에 경찰이 진입한 |
|것은 종로서장의 폭력자제 촉구에도 불구하고 총무원 3층으로 올라가던|
|도각스님이 거꾸로 추락했고 범종추 스님들이 온몸에 석유를 뿌리고 |

|분신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사태가 급박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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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발표한 상황이라서 진입했다라는 내용분석이 우선 작위적 상황
설명에 기인하고 있다. 첫째 이유는 [긴급상황]이라는 경찰측 해명에
대한 오류가 있고, 둘째 이류는 경찰의 연행상황을 작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따른 오류다.

이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29일새벽과 29일 하오부터 30일 새벽까지의
두차례 상황 차이를 구분해줄 필요가 있다.29일 새벽은 폭력배 난입으로
폭력사태가 발생한 그야말로 [긴급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때 경찰은 아무도 연행하지 않고 그져 [지켜만 봤을]뿐이다.
경찰의 연행이라는 행위는 상황이 전혀 달라진이후 벌어졌다. 즉 범종추
스님들이 규정부 직원들에 의해 동원된 폭력배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난 이후, 구총무원측의 [비열한 행위]를 규탄하고 총무원청사 진입을

시도하고 나서 부터이다.

여기서 부터는 폭력과 같은 [긴급상황]이 벌어진 것이 아니다. 경찰측
해명은 이 두가지 상황을 [긴급상황]이라는 이름아래 작위적으로 끌어다
붙였다.

첫째는 도각스님(범종추 호법부장)이 덕왕전을 지붕으로 해서 총무원
청사로 들어가는 순간 4층에서 던진 돌에 맞아 아래로 추락한 사건이다.
(그림설명-3)

둘째는 이후 경찰이 범종추스님(당시 총무원 입구에 포진함)을 입구에
있던 덕본스님(승가대 학인)과 정범스님(법종추호법)등이 석유통을 들고
"경찰진입하면 분신하겠다"고 외친 사건이다.(그림설명-4 사건-4 참조)

이 두사건은 순차를 두고 벌어졌다.즉, 새벽폭력사건->배후규탄->총무원
진입->구총무원폭력->추락사건->경찰진입->분신위협항의->경찰 연행의

수순이다.따라서 [추락사건후 경찰진입기도]가 사실설명에서 정확할 따름
이지 [추락사건과 분신기도등 긴급상황이라서 경찰이 진입했다]식의 경찰
해명은 상황자체를 폭력으로 호도하려는 다분히 의도적 조작까지 엿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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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류3: |
|경찰은 현장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동조했던 2백57명을 소속을 가리지 |
|않고 모두 연행조사했다.당시 위급한 상황에서 특정인을 가려 연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범종추측만 편파적으로 연행했다는 일부 여론은 |
|사실과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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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두 개라는 사실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 첫번째 상황인 폭력배
폭력난동상황(29일 새벽6시30분)때에는 어느쪽도 연행하지 않았다. 이때
폭력상황은 폭력배가 먼저 유발했다.


둘째, 상황인 30일 새벽 상황에서는 "긴박한 상황 "은 있었다. 그러나
이때 상황중 첫째는 도각스님 추락사건인데, 이 사건 역시 가해자는 4층
위에 있던 구총무원직원들이 돌을 던지고 물을 뿌리는등, 폭력상황
주범은 구총무원 직원들이었으나 그들을 연행하지는 않았다.

두번째 상황은 [분신위협]이 주 관건이다. 이때는 경찰이 총무원진입을
시도해 범종추스님들이 (이들은 먼저 총무원 입구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림설명-4참조) 경찰의 청사내 진입기도를 막았다.

이때 덕본스님등이 석유를 온몸에붇고 경찰측에 저항표시를 했다. (사진
참조)따라서 경찰발표처럼 "분신등 위급상황이 벌어져 경찰을 투입해
모두 연행했다"는 내용은 전혀 앞뒤가 맞지않다.

| 오류4: |

| 폭력배들의 서울호텔 투숙사실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것은 3월28일 |
| 야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조계사 주변에 범종추측 사람과 총무원측 |
| 스님.일반신도등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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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상황인 3월29일 새벽 6시30분 상황은 폭력배가 별도로 움직였다.
그리고 이들의 동향에 대한 경찰측의 정보인지 여부및 경찰의 대비상황은
앞서 설명한 바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될 사실은 폭력배들을 외관으로 구분하기는
너무도 쉬웠다는 점이다. 현장 비디오와 사진이 잘 말해주고 있다.
더구나 새벽에 벌어진 폭력배 충돌 현장에서 범종추측은 스님들이 대다수
였다.

또한 폭력배들은 경찰이 잘 알고 있는 구 총무원 고중록계장의 지휘하에
움직였다.(사진참조) 또한 문제의 고계장과 경찰(유준형형사)이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목격됐다.(사진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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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류5: |
|3월30일 개최직전 범종추측을 모두 연행한 것은 이날 오전 8시쯤 갑자기|
|집결한 스님.신도 2백50여명이 총무원 건물에 기습진입하려 했던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었을 뿐 서의현총무원장의 3선을 보호하려는 의도는 |
|전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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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30일 상오 8시 상황은 <상황도-5>에 나와있듯이 조계사내 건물들이
모두 경찰에 의해 장악돼 있을때였고, 특히 3곳의 입구는 경찰에 의해
원천봉쇄돼 있었다.이 상황은 전날(29일) 저녁6시이후 경찰이 긴급상황을
내세워 범종추측스님 2백57명만을 연행해간 직후부터 계속돼온 [조계사
경내 경찰장악]의 연장상태였다.


그리고 이후의 30일 상오 8시 스님 2백여명 연행은 대웅전에서 밤을샌
스님들이 문밖으로 나오는 것은 모두 연행해간 것이다.<상황도-5>사건
당시는 이미 비표가 없는 스님이나 신도는 경찰통제하 조계사내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따라서 [총무원기습기도 대비 모두 연행]이라는 경찰발표는 허위에 해당
된다.8시 당시 총무원 건물은 경찰병력에 의해 겹겹히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나서 중앙종회 개최시간은 상오 10시,30분후인 10시30분 서전원장
3선 연임이 가결됐다.

그 이후 상오11시부터 연행된 범종추 스님들이 석방되기 시작했다.이런
실제상황을 두고 경찰이 서전원장 3선연임가결을 위해 사건에 끼여든
것이 아니라는 주장 자체를 신뢰할 근거는 도저히 찾기 어렵다.


1994-05-14 00:00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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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유학 스님들 포교 모임 창립(법보신문, 617호 200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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