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일지] 2555년 1월 14일 참회기도 2일째   2011-01-15 (토)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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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를 이끌어 주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생각만으로 조계사 마당에 온 것 같지는 않다.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생각난다. 경허 만공스님, 만해 한용운스님, 김좌진 장군, 윤봉길 의사는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들었던 동네 어른들이셨고 예술적 깊이가 얕은 나에게 일엽스님과 이응로 화백과 나혜석 선생등은 지금도 마음속으로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내 머리속에 남아있다.

흥선대원군과 남연군묘 그리고 가야사지와 보원사지 등 이 모든 것을 가장 오래된 세월 동안 백제의 미소로 그윽하게 내려다 보시는 마애삼존불 부처님과 사면석불...

4년전 이맘때가 생각난다. 정말 뒤돌아보니 너무나 비슷하다.

그때도 종단 소임을 그만두고 종회의원 선거가 뭔지도 모른 채 전국을 세바퀴나 돌아다니며 인사한 끝에 직할교구에서 당선된 후 첫 개원 종회를 최연소 종회의원이라는 등 타이틀을 가지고 시작했었다.

지지해 주신 스님들께 감사의 인사도 채 드리기 전에 내포 가야산에서 이상한 소식이 들렸다. 송전철탑 공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천년 고찰, 가장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개심사 산허리를 휘감아 산을 넘어가는 거대한 송전철탑...

그때도 지금처럼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던 때였던 것 같다.  선거에서 큰 격려를 해 주셨던 산중 어른 스님들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철탑공사 소식을 좀 더 확인하고자  내려갔던 그 길이 10여개월 서울 사찰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나의 생에 두번째 큰 전환점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오늘 잠을 설치며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상황임이란 걸 알며 내 스스로 놀라고 있다. 내 몸속 깊은 곳에 이상한 유전자가 있나...내포 가야산 자락의 수많은 어르신들의 영령들이 내 주변에 있는것은 아닌지...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반복되게 들으면서 뼛속까지 스며있는 학습의 효과인가...잘 모르겠다. 

나는 지금 조계사 마당에 있다.

어제 미처 준비가 되지않아 뜻밖에 주차관리소를 빌려 노숙(?)으로 하루를 보내고 오늘은 이틀째를 맞이하여 근사한 호텔급 연화장세계가 펼쳐지는 듯하더니 이내 꿈 깨란듯이 본래의 나의 분수에 맞는 아담한 작은 수행처가 생겼다. 수처작주하라고 큰스님들 말씀하셔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마음에 조계사 마당에 방부 좀 들이려고 했더니 한국불교1번지 조계사는 주인이 참 많은 곳인가 보다. 하긴 골목길 포장마차도 자리세를 내야하는데 하물며 총본부 심장부에 방부를 들이는데 어찌 허락이 호락호락 하겠는가? 명동성당이나 조계사에 그동안 신세 좀 지고자 했던 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변에서는 나를 걱정하지만 나는 너무 행복하다. 의식적으로 행복해야지 하는 행복 마인드 컨트롤이 아니고 정말로 행복하다.
첫째는 옥천암 신도님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고, 1700년 역사에 자주성과 역사성을 높이살 만한 민족문화수호위 활동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한다는 행복이다. 엊그제  옥천암에서 천일기도 중 700일을 회향하면서, 남은 300일 기도회향은 장소를 옮겨 마무리하고 싶다고 신도들에게 동의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일방적으로 발표한 꼴이었다. 고마운 나의 옥천암 가족들은 내가 무엇을 하던지 응원해 주시더니 이번에도 묵묵히 더욱 용기를 내시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둘째는  공부와 수행이 부족한 내가 그동안 불법홍포를 위해 포교 좀 한다고 너무도 많이 돌아다니며 혹세무민한 과오를 참회할 시간과 공간이 주어진 것에 너무도 행복한 것이다. 때론 설익은 주장에 상처받거나 힘들어했을 사부대중들께 진심으로 참회하는 바이다.

세째는 그동안 선방 한번 제대로 가 보지 않은 내게 조계사 앞마당에 선방이 생긴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엄격하고 까다로운 덕숭산문 가풍에 젖었으나 학인으로 또는 포교승으로 있는 동안 이번 생에 나는 복이 부족하니까 공덕을 좀더 짓는다는 생각에서 열심히 수행정진하는 스님들을 외호하는 삶을 사는 것이 어떨까 막연하게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이렇게 내게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정혜사와 용주사 그리고 개심사 선원대중을 직접 시봉하여 행복한 기운을 느끼는 것에 만족한 내게도 직접 내 자신을 성찰할 기회가 이 도심 한가운데에서 주어지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조계사 마당....여러가지 생각이 스쳐간다. 23년전 1988년인가 처음 서울에 대학이란 곳을 다니기 위해 올라왔던 시골뜨기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으면서도 가슴설레는 일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에겐 예전이나 지금이나 서울 유학 생활은 해외유학처럼 등록금과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상상외로 큰 무게감을 준다.

지금 나의 본사 수덕사 방장스님께서 아마도 그 때 조계사 현근스님에게 요청하여 나의 숙소문제를 부탁하셨던 것 같다. 정릉 봉국사에 방을 마련해 주셨고 나의 대학생활은 정릉 봉국사가 서울 생활 첫 출발지였다. 그때 어렴풋이 조계사 주지스님의 배려에 대해서 대해서 잠깐 생각했던 것 같다. 1년만 살고 화계사 백상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긴 인연은 아니었다.

그렇게해서 파란만장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복수전공을 한다고 4년 더하기 1년 총 5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수원 용주사와 수원포교당에서 포교현장의 큰 경험을 쌓고 군승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불교와 정치권력과의 유착이 한국불교 발전에 큰 장애가 되어 곧 세상이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종단개혁을 위해 모두가 일어서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어리숙한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대중울력에 빠지면 큰 죄라도 짓는 것 같아 단순하게 참가했던 것이 점점 확대되어 3천명의 스님들을 외호하는 원주 소임을 맡아 김밥과 우유를 준비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 새록새록 큰 추억으로 다가온다.

전투경찰을 앞세운 숨은 권력과 그 당시 총무원 집행부는 5백여명의 기도정진 대중들을 압박해 들어가 대웅전 안으로 몰아넣고 총무원 청사에서 끌어내기 위한 마지막 대치상태에 있을 때 시장에 갔다가 돌아온 나의 눈앞에 일촉즉발의 모습이 전개되고 있었다.

갑자기 중앙승가대 출신 스님과 또 한 스님이 전경들의 난입을 막고자 격렬하게 저항하며 최선봉에서 목숨을 걸고 지키는 모습에 격분하여 함께 동참한 것이 훗날  내 일생에 가장 많은 방송조명을 받았던 기록으로 남게 되었던 현장이 바로 이 조계사 마당이다.

새벽 도량석이 힘차게 들리기 시작한다. 새벽예불 시간이 다가온다. 
나의 조계사 첫 방부는 이렇게 시작된다. 4년전 가야산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을 모시기 위해 아무것도 없는 산중에 천막을 치던 기억이 난다. 전기가 없으면 얼마나 불편할까 하는 문명의 이기.. 세면장, 화장실 등 평소 우리 주변에 그 흔하던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던가를...
여기는 산속의 수행처에 비하여 편한 것으로는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전기를 쉽게 쓰는 것은 물론이고 무선인터넷을 자유롭게 쓴다. 어디서 전파를 당겨오는지는 모르지만..    도심속이라 그런지 바람도 별로없다. 밖은 영하 15도를 가리킨다는데 말이다. ㅎㅎㅎ 가야산에서 비바람이 불때 천막이 날아갈까봐 밤새 붙잡고 날밤을 지새웠던 생각이 난다. 
다만 산속 깊은 곳의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와는 다르게 인위적인 자동차와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온갖 소리들로 여기가 도심 한가운데 임을 잊지 않도록 해 준다. 새들이 말한다는 의미를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옥천암 가족들을 위해 가까우니까 아침 새벽기도는 그래도 절에가서 반드시 할 것을 약속해 본다. 수행을 하려면 좀 단순해야 하는데 그정도 여건은 아닌 것 같다. '참다운 기도의 시작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을 가지고 하면 된다'라고 신도들에게 매번 얘기했는데, 내 자신이 천일기도를 온전하게 같은 장소에서 마칠 인연은 안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러나 조계사마당과 옥천암은 삼각산 자락이니 삼각산의 마애부처님과 연결되어 있기에 같은 장소로 애써 이해해본다.

지금 나에겐 두가지 속 사정이 있다.
첫째는 300일 기도회향을 일방통보하듯이 신도님들의 동의도 없이 나왔던 잘못인지 주변에서는 1차 100일기도에 대해서만 허락해 주신다. 100일 안에 한소식 해야 하는데 부담이다. 업장이 두터워서...

둘째는 규칙적으로 세끼 꼬박 먹는 것으로 평소 활동을 뒷바침해 온 체력인데 그래도 수행을 모처럼 하면서 스스로 다짐하는 약속에 오후불식을 해 보려고 한다. 의사가 그토록 강제를 하였어도 잘 안되었는데 이번에는 저절로 될 것 같다. 잘 되면 다음 백일마다 한끼씩을 생략해 볼까? ㅎㅎㅎ 역시 인연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제서야 부처님의 고행하신 심정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고 있으니..

어서 새벽예불을 하러 출발해야 한다. 생각에 따라 칼을 에는 바람도 상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정말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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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5년 1월 15일 참회 정진 3일째 
불기2555(2011)년 1월 13일 -8차 100일 참회기도를 시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