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충이 없는지 살펴볼 때 (불교포커스 2010-12-22)   2010-12-23 (목)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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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충이 없는지 살펴볼 때

사자를 ‘백수의 제왕’이라고 부른다. 맹수들 중에서 가장 힘이 강력하여 나름대로 힘과 꾀를 자랑하는 그 어느 짐승이라도 사자와 맞붙어 싸워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자에 빗대어 동서양의 강력한 군주들은 자신을 사자에 비견하고 상징으로 삼기도 하였으며, 부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전해주는 진리의 말씀도 사자의 포효-사자후-에 비유하곤 한다.

사자가 이런 인정과 대접을 받는 것은, 사자 한 마리 한 마리가 가진 힘도 다른 짐승들에 비해 강하지만 그보다는 집단생활을 하면서 나름의 규율이 있어서 각 사자가 가진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집단의 규율이 무너진 사자는 이리나 늑대 떼에게도 쩔쩔 매는 아주 나약하고 비겁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게다가 몸 안에 불과 1㎝도 안 되는 기생충이 침투해 들어와 사자 몸 안에 자리 잡고서 온갖 영양분을 가져가 버리는 날에는 늑대나 이리 떼가 아니라 홀몸으로 달려드는 살쾡이에게도 쫓겨서 줄행랑을 치지 않으면 안 된다. “제 아무리 백수의 제왕이라고 하는 사자도 집단이 깨지고 몸 안에 벌레가 생겨나면 고양이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뜻에서 ‘사자충’이라는 비유가 생겨났고, 이 말은 이제 사자를 비유할 때보다는 오히려 인간 세상의 어떤 현상을 가리킬 때 더 자주 쓰이고 있다.

   제행무상은 불교에도 ···

‘제행무상’하는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불교 집안 또한 2,600년 동안 명멸을 거듭하였다. 과거 오랜 세월 동안 지역 중생들의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희망의 등불을 밝혀주며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 피웠던 지역에서 불교의 등불이 완전히 사라진 곳도 있고, 이제까지 불교를 접하지 못했던 지역 사람들이 불교를 접하면서 그 지역에서 새 불씨가 피어오르고 진리의 등불이 꺼지지 않고 더욱 넓게 퍼져나가는 곳도 있다.

혹자는 이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멋진 꽃만 들여다보며 “이제 불교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하기도 하지만, 지난 2,600년 동안 불교의 등불이 꺼져간 곳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고 괜히 해보는 말일 뿐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아 우리에게 전해주고 가신 이 진리의 가르침-불법이 위대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이 위대한 가르침이 전해지는 곳마다 진리의 등불이 활활 타오르지 못하고 아예 사라지는 곳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외도들의 무력 공격 때문일까. 더 뛰어난 가르침을 깨달은 이가 나타나 그 새 가르침을 제대로 전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재가 신도들이 승가를 외호하지 못하고 제대로 공양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물론 이 모든 사항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어떤 때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또 어떤 때에는 이런저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불교의 기반을 더욱 빨리 무너지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깊이해보면 이 모든 이유가 단 한 가지에서 연유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몸속의 기생충 한 마리가 백수의 제왕 사자를 고양이 앞에서도 꼬리를 내리고 슬금슬금 도망치는 비겁한 존재로 만들어주듯이, 승가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아 “어디 먹을 것이 없을까?” 찾느라 눈 · 귀와 코를 활짝 열고 찾아다니는 무리들이 있어서 온 승가를 썩게 만들고 재가자들을 떠나가게 하여 이들이 외도의 꼬임에 훌쩍 넘어가게 하고 권력이 불교를 우습게 여기며 자신들의 장난감으로 여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처럼 맞은 호기를 놓치면 …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안타까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요즈음 우리 불교계가 정말 좋은 기회를 만났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따라 수십 년 동안 권력에 굽히며 그들이 시혜라도 베푸는 듯이 전해주는 예산 몇 푼에 잡혀서,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중생들의 목소리를 바르게 들어보려 애를 쓰지 못하였으며, 그래서 세상에 대고 올바른 소리를 내지 못하며 지내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러려니…” 여기며 저들이 던져주는 예산 몇 푼에 자부심을 팽개치고, 대신 가사 한 벌과 발우 한 벌로 자족했던 승가 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나 호화 생활을 하며 재가 신도들 위에 군림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일부 극단적인 개신교도들이 이런 우리를 질책하며 - 물론 이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 “제발 그러지 말라”고 따끔하게 일깨워주었다. 마침 이 극단적인 개신교도들에게 끌려 다니며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국가 정책을 펼쳐온 집권세력에서도 “불교계에 예산을 많이 주겠다”고 하다가 뒤통수를 치며 신의를 저버리는 미묘(?)한 짓을 저질렀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 당황한 조계종에서 이 배신행위를 성토하자, 집권세력에서는 이런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이 ‘불교계가 예산 60억 원 때문에 발끈한 것’으로 비치게 여론 작업을 하며 정권 수뇌부가 조계종 총무원을 찾아갔다가 발길을 되돌리는 ‘쇼(show)’를 펼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쇼’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이 정도에서 “아, 감사합니다. 몇 푼 더 주시겠다니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감읍 할 줄 알았던 조계종이 아예 “정권을 상대하지 않겠다. 은혜라도 베풀듯이 전해주는 지원 예산을 받지 않고, 우리 힘으로 당당하게 종단을 운영해 나가겠다”고 선언하고 나온 것이다.

그렇다고 이 정도에서 물러설 정권이 아니다. “아, 그래? 한 번 해볼까?”하면서, 정권 수뇌부와 하수인들이 갖고 있는 불교계 인사들의 인맥을 동원해 각개 격파에 나선 것이다. 전화로, 때로는 화재 위문을 핑계로 찾아가 “뭐 도와드릴 것 없겠습니까?” 물으며 조계종과 불교계의 의지를 시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시험에 넘어가 정부와 여당 인사들을 극진히 대접하며 예산을 부탁하는 곳도 있고, 여당 국회의원을 동원해 “우리 절에 문화재보수비를 하사해 달라!”며 떼를 쓰는 중진 승려들도 있다.

정부 여당 인사들에게 “아무 걱정 마십시오. 종단 지도부가 무능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니 멀지 않아 사태가 수습될 것입니다”며 마치 정권을 아끼고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라도 된 듯한 언행을 쏟아내는 인사들도 있다.

어떤 식으로 하든, 이들의 속내는 “종단이나 불교계야 어찌 되는 정부 예산 지원 받아 개인 주머니에 집어 넣겠다”는 돈 욕심이거나 정부의 도움을 받아 종단 집행부를 무너지게 하고 그 자리를 차지해보려는 권력욕에 다름 아니다. 이런 모습이 솔직한 우리의 현실이다.

아무리 무능해 보이는 정권이지만, 그래도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힘은 막강한 법이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힘과 정보망을 모두 동원해 불교계의 기생충들을 찾아내고, 이 벌레들에게 영양제를 먹여주며 열심히 싸우게 하려고 할 것이다. 어떤 벌레에게는 ‘돈’을 약속하고 또 다른 벌레들에게는 ‘다음 종권’을 약속하는 달콤한 꼬임수를 진행할 것이다.

우리 불교계가, 범위를 좁혀서 조계종 집안이 안팎으로 튼튼하다면 이런 기생충 무리들을 걱정할 일이 없지만 솔직히 그렇게 단단하지 못한 것이 우리 집안 사정이다. 우리가 가진 것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힘을 쌓고, 외부 권력에 통째로 넘겨줄 준비를 하고 있는 무리들이 있어서 단단한 기반을 세울 수 없게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백수의 제왕 사자는 몸 안의 기생충 때문에 죽어간다. 불교계도 결코 외부 세력의 공격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사자충같은 무리들이 있어서, 우리가 모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우뚝 일어서려’고 하면 안에서 힘을 빼앗아 쓰러뜨리기 때문에 무너져 간다.

제발 역행보살들 덕분에 맞은 자주와 자립의 호기를 이 사자충 같은 무리들 때문에 또 다시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에도 못된 짓을 하려는 사자충 무리들이 있으면 사부대중이 힘을 모아 영원히 쫓아내버리는 기회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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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생매장 살처분 즉각 중단하라” (불교신문 2010-12-27) 
폐사지처럼 산다- 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