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불교사 지도는 불교의 사회경제사상에 끼친 영향을 압축한다. 이 지도는 고대인도가 고답적인 것에서 탈피해 새로운 문명이 태동되는 과정에 불교가 끼친 영향을 공간적 개념을 갖고 볼 수 있다.
정진은 노동의 개념과 상통한다. 연기법과 사성제는 고통을 낳고 영속화시키는 경제구조에 도전 논리를 제공한다. “땀 흘리는 노동과 고통이 사라진 열반 사이에 거리가 느껴졌던 것은 노동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다.” 근본교설에서 불교경제사상을 정립하는 박경준교수의 논점은 노동을 유전문(윤회문)과 환멸문(해탈문)으로 분리하며 확연해 진다. 현실고(苦)가 진행되는 유전연기와 열반에 이르는 과정의 환멸연기, 유전문은 무명과 욕망에 바탕을 둔 노동이고 팔정도에 근거한 환멸문 쪽 노동은 각기 다르다.
“조선 불교 재산은 스님들이
노력한 결과 이뤄진 집적물”
노동 통한 사회통합 제시
박경준 지음/ 동국대출판부
불교에서 노동의 경제가치는 매우 긍정적이다. <법화경> ‘법사공덕품’과 <화엄경> ‘정행품’은 노동을 ‘욕망의 질적 전환’이라 지칭한다. 업설(業設)은 여기서 경제학의 노동개념과 동일시된다. “초기불교에서 출가자의 노동과 생산활동이 금지된 것은 노동 자체의 부정이 아니라 출가자의 본분 강조 때문이다.” 노동 자체가 거룩한 수행의 과정이므로 노동은 재화만 아니라 인격과 신성의 가치를 갖게 된다. 이에 저자는 대량생산체제의 자본주의 난제 이후를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로 진일보하며 고실업 해소책을 제시한다.
교단경제의 난제는 어떻게 타개될까. 지금의 한국불교 재산은 조선시대 스님들이 노력한 집적물이란 점이 실마리다. 사원 운영의 재정확보를 위한 자구책을 보자. 탁발, 전지 개간, 짚신 미투리 종이 등 제작, 누룩 빚기, 심지어 품팔이도 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갑계(甲契) 미타계 관음계 등 계를 통해 공동의 자구책을 세웠다.
반면 왕공귀족과 부호들의 시주가 늘어나면서 사찰이 큰 재산을 형성해 걸식이 중지된 중국의 교단경제를 보자. 전답 보시가 성행해 비중이 절대적으로 커진 사전(寺田)을 토대로 개간에 투자하거나 저당에 의한 토지 병탈로 전답이 더 늘어가면서 ‘사장(寺莊)’이라 부르게 된다. 귀족과 부호들은 사재에 절을 지으며 전답을 기증해 포세면탈의 편법이 가해지고, 사찰에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소득을 올리는 전당포(質庫)도 생겼다. 당나라에서는 자본투자로 방앗간이 지어지고 점포 창고 건립에 수레 대여 사업까지 진출했다. 부가 집적될수록 사찰의 공유재산과 승려의 사유재산을 구분하는 장치와 처벌규정이 강해졌다. 덩달아 위장출가자도 속출했지만, 반대급부로 ‘무진장’ 같이 사원이 사회구제사업 진출도 제도화됐다.
사회경제 사상을 파고드는 힘은 연기와 사성제의 치밀한 분석이 뿌리이다. 연기법의 특성은 인간과 우주의 궁극적인 ‘제1원인(prima causa)’의 배제이다. 존재의 상호작용과 생멸 변화만을 인정하는 연기법과, 시간적 제법(제행무상)과 공간(제법무아)의 삼법인을 연결하며 ‘무상의 실천론’으로 들어간다. 감상이 아니라 창조적 삶의 연속성을 일깨우는 무상은 ‘근행정진’의 뿌리를 세운다.
무아의 실천도 마찬가지이다. 실아(實我)를 부정하고 가아(假我)와 진아(眞我)를 찾아내는 과정은 ‘참나의 실현’이고 ‘열반의 성취’이며, 이는 곧 인간완성 자기완성의 노력과 실천이다. 저자는 무아 사상을 전체주의와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객관화.사회화를 시도하지만 자유 행위의 선택에서 독창성과 개성이 강하게 살아나야 무아에 근접한다. “나를 끝없이 죽여 가며 동시에 나를 끝없이 살려내는, 중도적 노력과 실천이다.” 저자의 무아행 규정은 창조적 삶의 근행정진이다.
더구나 정진은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근대적 사회계약론으로 연결되며 사회사상의 진면목을 보인다. 교리에 기반을 둔 세계의 시대적 진화에 관한 이론을 들춰보면 고대 정치.사회 이념을 저장하고 있다.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인 저자는 그것을 사회통합의 원동력 제시와 인민들의 도덕성 증대와 더불어 부의 평등분배를 실천하는 전륜성왕의 이상적 통치자상으로 정리한다.
김종찬 기자
[불교신문 2677호/ 12월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