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신자유주의]한국 배관공 “자식교육·여가·노후준비 꿈도 못 꿉니다”(경향신문 2009-07-20)   2009-07-21 (화)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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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한국 배관공 “자식교육·여가·노후준비 꿈도 못 꿉니다”

4부 -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1) 일의 즐거움, 노동의 존엄성
덴마크 도축공, “땀 흘린 만큼 벌고 가족과의 삶 즐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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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입력 2009.07.20 18:43 |
5월29일 덴마크 링스테드시. '데니시 크라운' 도축장 출구가 갑자기 부산해졌다. 오후 2시55분이었다. "무슨 일이 났나요?" 기자가 물었다. 도축공 초븐 렝스(43)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퇴근시간이잖아요."

도축장 안쪽 인부들은 손질된 돼지고기를 정리하며 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다. "자. 집에들 가자고! 휴일을 즐겨야지!" 퇴근 준비를 마친 초븐이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월요일은 '예수승천일'로 공휴일이다. 긴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 퇴근시간이다. 초븐을 따라 공장 밖으로 나왔다. 100여명의 도축 노동자들이 출퇴근 카드를 찍으며 주차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주차장은 차량 2000여대는 족히 세울 만큼 넓었다. 중동·동유럽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아직 해는 하늘 한 가운데 있었다.

같은 시간 한국의 건설노동자 박상익씨(50·가명)는 서울 중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건설현장에 있었다. 가장 힘든 시간이다. 꼬박 8시간째다. 아직 퇴근까지는 3시간 남짓 남았다. 아침 체조시간은 오전 6시50분인데 이 때까지 도착하려면 적어도 5시에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점심 식사 후 쉴 겨를도 없이 일하다 보니 졸음이 몰려왔다. 현장 한쪽에서 잠시 한숨 돌리려 했다. 그러나 이내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이 박씨, 밥값은 해야지." 퇴근시간인 오후 6시. 아직 박씨가 맡은 층의 보일러 배관 마무리 작업이 조금 남았다. 현장 관리자는 "웬만하면 빨리 진행하자"고 했다. 다 마치고 나니 오후 7시. 머리와 옷에 쌓인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술이나 한잔 하지." 그는 동료들과 근처 포장마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힘든 일한 만큼 보상받아야죠 "
초븐은 도축공이다. 한국의 박씨와 같은 육체 노동자다. 경력도 비슷하다. 박씨는 1991년부터 18년째 건설현장 배관공으로 일하고 있다. 초븐은 93년부터 16년 동안 돼지고기 가공업체 '데니시 크라운'의 도축장에서 일했다. 입사 이후 10여년간 도축된 돼지의 배를 갈라 내장을 분리하는 일만 했다. 경력이 쌓여 최근 5년 동안 도축장 기계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다. 육체 노동자라 해도 초븐과 박씨의 노동조건과 삶의 질은 다르다.

초븐이 살고 있는 덴마크의 연간 근로시간은 1577시간(2007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최하위권이다. 한국보다 700시간 이상 짧다. 빈곤율은 0.05로 30개국 중 가장 낮고, 지니계수는 0.23으로 빈부격차가 가장 적다. 출산율은 2006년 기준 1.85명으로 유럽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삶에 대한 만족도는 76.8점으로 30개국 중 5위이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 노동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2316시간이다. 2006년에 이어 부동의 1위를 지켰다. 2위인 헝가리(1986시간)와 300시간 이상의 격차다. OECD 국가들의 평균 근로시간 1768시간을 한참 웃돈다. 가난한 사람은 30개국 중 6번째로 많다. 빈곤율은 0.15. OECD 30개국 중 6위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18.7명으로 3위.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 합계 출산율은 2006년 기준 1.13명. 2년 연속 30개국 중 최하위다. 여가 시간은 주당 30.7시간으로 세계 평균(39.2시간)을 밑돈다. 평균 수면 시간은 하루 470분(7.8시간)으로 잠을 가장 적게 잔다.

삶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23.1점으로 OECD 30개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 24위이다. 한해 동안 겪은 고통, 우울, 슬픔 등을 나타내는 부정적인 경험 수치도 61.5점으로 OECD 평균인 35.6점보다 훨씬 높다. 요컨대 한국은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자지만, 가난한 사람은 많고 자살률은 높은 병든 사회일 뿐 아니라 삶의 질은 최하 수준의 행복하지 않은 사회이다.

지난달 11일 만난 박씨는 땀을 훔치며 말했다. "요즘 과연 일을 계속 해야 할지 망설여져요." 일이 고된 건 말할 수 없지만, 문제는 그렇게 고된 일을 하는데도 생활 유지가 어렵다는 점이다.

"건설 현장에 20년 있었지만 변한 게 없어요. 사람들이 '노가다' '날품팔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건 변하지 않았어요. 거기다 임금은 안 오르고, 물가는 오르고. 뭘 먹고 살 수도 없는데 자식들 가르치고 이런 건 엄두도 못 내는 겁니다."

박씨는 일용직이다. 아침 7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6시에 끝난다. 평균 10시간, 주 60시간 이상 일을 한다. 공사기간이 촉박해지면 일요일도 없다. 야간·연장근무도 다반사다. 수당을 제대로 쳐 주는 때는 거의 없다. 명절이나 공휴일엔 오히려 일거리만 늘어난다. "임금 체불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죠." 그렇게 고생하면 한 달에 150만~180만원 정도 번다. 고 3인 아들과 아내의 생활비와 학비 대기에도 벅차다. 여가나 노후 준비는 생각도 할 수 없다. 박씨의 시간과 몸값은 이렇게 싸다. 삶의 절반 넘게 오롯이 일에 투자했는데도 사는 모양이 이렇다.

그러나 초븐은 "하는 일에 만족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너무 너무 만족해요. 무엇보다 급여에 만족합니다. 일한 양만큼 정확히 보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보상도 더 받는 것이죠."

초븐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40시간을 일한다.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3시에 퇴근. 박씨와 출근 시간은 같지만 3시간 먼저 퇴근한다. 물론 주말과 공휴일엔 쉰다. 그는 "데니시 크라운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실시하고 있다"며 "오전 6시에 출근해서 낮 2시에 퇴근하는 사람도 있고, 야간 근무를 하는 이들도 있다. 공정에 따라 주 37~40시간으로 조금씩 다르지만 받는 돈은 일한 시간만큼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해서 초븐은 세전 월 3만 크로네를 번다. 원화로 700만원 정도다. 박씨에 비해 노동시간은 주 20시간 이상 적은 반면 급여는 4~4.5배 많다. 초븐은 수입의 약 40%가량을 세금으로 내지만 연금·의료·교육·보육 등을 모두 국가 공공서비스로 해결해 주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고 했다.

#"너무 일 많이 하면 조사받아요"
초븐은 깔끔한 하늘색 작업복과 흰 위생모, 나무로 만들어진 딱딱한 위생화 차림이었다. "도축장을 좀 둘러 보자"는 요구에 흔쾌히 앞장섰다. 그가 바람을 가를 때마다 돼지 생육(生肉) 냄새가 비릿했다.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선 외부인도 일회용 위생점프 슈트와 모자, 신발을 착용해야 한다. 출입구에서 3단계 자동 소독장치에 손과 발을 소독했다.

도축장 내부는 어둡지도, 축축하지도 않았다. 핏덩이가 말라붙은 낡은 갈고리도, 혐오스럽게 진동하는 피비린내도 없었다. 공산품을 생산하는 신설 공장 분위기에 가까웠다. 현대적이고 쾌적했다. 줄줄이 기계에 매달린 도축된 돼지들은 깔끔했다. 각 공정에 따라 점차 '돼지고기'의 형태를 띄어가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초븐과 같은 복장으로 일렬로 늘어선 돼지들 사이에 서서 배를 가르거나, 뼈를 분리하거나, 부위별로 고기를 잘랐다. 초븐은 내장을 분리하는 파트 앞에 서더니 "이게 내가 10년간 하던 일"이라며 포즈를 취했다.

돼지고기에서 빠진 핏물이 흘러 내려가는 수로 옆으로 노란 띠를 팔뚝에 두른 이들이 눈에 띄었다. '안전관리감독관'이다. 1200여명이 일 하는 이 공장에만 17명이 있다. 직원들의 안전 상태를 점검한다. 그 중 한 명인 헨릭 베렌디가 말했다. "현재 안전사고는 1년에 50건 정도뿐이에요. 처음에 노조의 직업환경 분야 담당팀이 문제제기를 했죠. 그래서 고용주와 함께 해결책을 찾아 지난 5년 동안 80%를 줄인 결과예요."

그리고 그는 말했다. "칼로 인한 사고는 많이 줄었어요. 최근엔 소음 관리를 위해 현황 파악 조사를 했습니다. 소음 감소와 직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사측과 함께 고민 중입니다."

데니시 크라운 도축장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산재보험 적용은 물론 나머지 치료비 전액도 회사에서 부담한다. 치료 기간엔 월급 전액이 지급된다. '과잉노동' 금지 규정도 엄격하다. 헨릭은 말했다. "1시간 동안 고기 자르는 양이 정해져 있어요. 과도하게 어기면 직장안전관리청에 보고를 하게 돼 있고, 경찰·직장안전관리청에서 나와 조사를 하지요."

박씨는 지난 1996년의 사고를 떠올렸다. 디디고 있던 파이프의 볼트가 빠지면서 3층 높이에서 추락했다. 코가 부러지고 가슴에 타박상을 입었다. 회사는 산재 처리를 거부했다. 직접처리(공상처리)를 고집했다. 산재 처리를 많이 하면 회사의 산재보험료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산재 다발업체' 이미지는 공사 입찰에 지장을 준다. 때문에 많은 국내 업체들이 산재 처리를 꺼린다. 이건 위법이다.

"업체와 한 달 동안 싸워서 겨우 산재로 60% 보상만 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회사가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건설 현장에서 1년에 700명 이상이 죽어요. 매일 2~3명이 죽는 겁니다. 사고가 아니라 죽는 게 그 정도입니다."

작업 환경은 열악하다. "바닥과 천장엔 암면 가루투성이입니다. 환기가 안돼요. 밀폐돼 있거든요. 일하다보면 숨쉬기가 힘들어요. 목이 칼칼해서…. 보안경을 지급하긴 하죠. 며칠 쓰고 나면 하얗게 돼서 보이질 않아요. 교체해달라고 해봐야 안 들어줘요. 샤워시설 같은 게 어딨대요."

박씨는 이어 말했다. "잠깐 짬이 나 쉬기만 해도 눈치를 줘요. 그러다 찍혀서 '나가라'고 하면 나가는 수밖에요. 회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안중에도 없겠죠." 그는 스스로를 '파리 목숨'이라고 말했다.

#"도축장 일한다고 무시당하진 않아요"
초븐과 박씨의 차이는 육체 노동자에 대한 사회 인식에서도 나타난다. 박씨는 아들이 가져온 가정환경조사서 직업란에 '건설업'이라고 쓰곤 했다. "건설업이라고 얼버무리고 마는 거죠. '너희 아버지 노가다 하고 다니냐' 하면 애 한테 창피스러운 일이잖아요. 건설현장에서 배관 설비 일을 한다고 떳떳하게 얘기를 못하는 거예요." 박씨는 덧붙였다. "나도 현장에선 내 기술에 자부심이 있어요. 하지만 아들은 나같이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반면 도축공인 초븐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단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한국에선 종종 '백정'이란 말로 폄훼되곤 하는 직업이다. 도축공으로 살면서 차별적 인식 탓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을까. 그는 그런 질문 자체에 놀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똑같이 땀흘려 일하는데, 아니요, 아니요 그럴 순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의사나 교수는 존경을 받습니다. 하지만 도축장에서 일한다고 남에게 무시당하진 않아요. 저는 여기서 15년 이상 일했습니다. 도축 분야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어느 누구보다 전문가예요."

초븐은 대학에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에도 안 갔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받은 교육은 9년간의 초등의무교육이 전부다.

"초등교육을 마치고 농업에 종사하려고 농업 직업교육을 받긴 했죠. 여기선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삶에 크게 부족한 게 없었어요. 더 교육받을 생각은 안 해봤는데…. 언제든 원하면 필요한 분야를 찾아서 배우면 됩니다. 교육은 언제나 무료이거나 저렴하고 평생교육체제라 나이에 관계 없이 배울 수 있어요."

덴마크의 성인교육 참여율은 58.5%에 이른다. 26.7%인 한국의 두 배 이상이다. 언제나 교육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대학 진학에 대한 강박도 없다. 9~10년의 의무교육 이수 이후 인문계 고등학교 혹은 직업학교에 진학하고 이 중 일부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코펜하겐 직업훈련센터 TEC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예트 노셀은 말했다. "직장에 취업할 생각이면 직업학교를 선택하는 게 흔한 일입니다. 9학년 학생의 절반 정도가 직업학교에 가죠. 대학은 정말 학문적으로 '공부'하려고 가는 곳이에요."

#"퇴근하면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야죠"
오후 3시 초븐이 2인승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집에 가서 더 이야기하죠." 기자는 택시를 잡아 탔다. 선글라스를 낀 젊은 택시기사는 "여기는 인건비가 워낙 비싸 택시비도 비싸다"고 설명했다. 초븐의 집까지 택시 요금은 600크로네(약 14만원)가량 나왔다. 과연 고임금의 나라였다. 초븐의 집은 링스테드시 카라 벡스미네의 한적한 농촌의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회사로부터 35㎞가량 떨어져 있다. 결혼한 지 4년 만에 350만크로네(약 8억2000만원)짜리 집을 30년 장기융자로 마련했다. 덴마크에선 보통 30년간 저리로 빌려주는 은행 주택 융자로 주택을 구입한다고 했다. 아내는 파트타임 간호사, 아들은 셋이다. 차고엔 초븐이 타고온 2인승 차량 외에 한 대가 더 있었다. "한 대는 가족을 위한 차죠." 잔디 정원은 넓었다. 아이들을 위한 미끄럼틀과 그네, 시소가 놓여 있다. 함께 간 가이드는 "이 정도면 덴마크에서도 무척 좋은 집에 속한다"고 귀띔했다.

이미 귀가한 아내와 아이들이 그를 맞았다. 오후 3시40분이었다. 아내 메톨리는 식탁에 앉아 동료에게 줄 카드를 쓰고 있었다. 저녁 땐 동료의 송별 파티를 하러 나간다고 했다.

"매일 이 시간이면 초븐이 회사에서 돌아와요. 퇴근 후에요? 가족과 함께해야죠.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아이들과 놀고, TV를 보거나 책도 읽고 그런 평범한 일상이요. 오늘처럼 외출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편은 아니죠." 메톨리가 말했다.

초븐과 아이들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커피와 데니시 페스트리가 접시 위에 놓였다. 초븐은 기자와 공장에서 있었던 일을 늘어놓았고, 메톨리는 병원에 들어온 어린 환자 얘기를 했다. 9살 맏이는 오늘 학교에서 배웠는지 '덴마크 왕정'에 대해 줄줄이 설명했다. 사진에 담기 위해 퇴근 후 지내는 평소 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9살 꼬마가 "이런 게 평소 모습인데요?" 했다.

주말엔 정원을 가꾸거나 친구 가족들과 모여서 가든 파티를 한다. "퇴근 후 직원들과 회식 같은 건 안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회식이 뭐냐고 되묻는다. "그런 건 없어요. 음…1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 런치 정도? 하하하. 퇴근하면 모두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에 갑니다. 남아서 술 같은 건 잘 안 마셔요."

메톨리가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이날 저녁시간의 아이들 돌보기는 초븐의 몫이었다. 식사를 준비하는 초븐의 손길이 자연스러웠다.

박씨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산다. 1990년 결혼한 이듬해에 장만한 33평짜리 다가구 연립주택이다. 낡은 집이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이사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퇴근 후엔 대부분 잠을 잔다.

"새벽에 일 나가야 하고 일 하면서도 잘 쉬지 못하니 많이 피곤하죠. 일요일엔 등산을 가기도 하지만 거의 잠을 잡니다. 여가시간은 생각하기 힘들어요. 또 비가 오거나 자재가 안 들어오면 그 날 일은 허탕이잖아요? 그럴 땐 현장 동료들과 낮부터 술 한잔 하죠. 그게 아니라도 현장에 있으면 기분 나쁜 일이 많습니다. 임금을 떼이는 경우도 많고 업체 쪽 젊은 대리들이 막 대하거나, 자재 안 들어온 것에 대한 책임을 일 하는 사람들에게 전가하거나…. 그러면 또 그거 풀려고 술 마시고 그러죠."

박씨의 아내는 이번 달부터 '희망근로 프로젝트'를 통해 일을 시작했다. 두 사람의 소득을 합하면 190만~220만원 정도. 고3인 아들을 학원에 보낼 여유는 없다. 생활비, 학비 대기에도 빠듯하다.

"아이를 한 번도 학원에 못 보내줬습니다. 아이도 나름대로 대학은 가야지, 학원은 안 보내주지, 답답하죠.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원하면 다 해주고 싶은데 미안한 마음이 많아요. 그래서 이해 좀 해 달라, 그 대신 대학에 들어가면 노력해서 가르치겠다 얘기했어요. 아이도 현실을 아니까 수긍해주더라고요. 고맙게 생각해요."

저축은 생각지도 못 한다. 노후 대책을 물었다. "건설 현장 들어오기 전에 잠깐 제화 공장 사업을 했어요. 다행히 그때 나랑 집사람, 아들 앞으로
연금 보험을 들어 놓은 게 있어요. 그때 해 놨으니 망정이지. 일단 아이 대학까지 가르치고, 나와서 직장이나 다니면 우리 두 부부가 빠듯하게 생활할 수 있는 정도는 되지 않겠느냐 생각은 하지만, 사실 막막합니다."

#"저축은 노후 아닌, 휴가 여행 위한 것"
초븐 부부의 총소득은 세전 연 70만크로네(약 1억6300만원)이다. 파트타임 간호사로 일하는 부인과 맞벌이로 어린 아들 셋을 키우지만 크게 힘들지 않다. 질 좋은 공공 보육시설에서 아이를 맡아준다. 비용도 저렴하다. 2살 막내는 공공탁아소에, 5살 둘째는 공공유치원에 맡긴다. 9살 맏이는 학교가 끝나면 학교에서 마련한 방과후교실에 간다.

"세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월 1만크로네(약 230만원) 정도면 충분해요. 보육시설 비용 외엔 아이들 취미생활로 승마, 축구 클럽 등에 보내는 비용이 들 뿐이에요. 학교는 물론 무료이고요. 아플 때도 병원이 무료니까 따로 돈 드는 건 없죠. 학원요? 따로 학교 공부를 위해 보내는 학원 같은 건 없는데요."

노후를 위한 저축도 필요 없다. 연금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저축은 "휴가 때 여행가려고 가끔 하는 단기 저축 정도"와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자기 기반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들어둔 어린이 저축"이 전부다. 버는 돈은 모두 현재의 윤택한 삶을 위해 쓰는 셈이다.

"지출은 아무래도 세금이 제일 많죠. 그 외엔 주택 융자 상환으로 내는 돈이 좀 많아요. 최근 몇 년 사이 집값 폭등으로 상환액이 늘어나서 예전보다 좀더 부담스럽죠. 그래도 연금이나 애들 보육·교육·의료 등 나머지는 세금만 내면 국가에서 다 해 주니까. 개인적으로 보험을 든 건 개인 생명보험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부부 중 한 명이 죽어도 지금과 똑같은 수준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들어둔 거예요."

#"도대체 6시 이후에 무슨 일을 하나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초븐은 기자에게 '당신은 얼마나 일하고 얼마를 버는가'를 물었다. 대답을 듣더니 깜짝 놀란다. "아니, 오후 6시 이후에 도대체 무슨 할 일이 있어요?"

초븐은 하루 8시간 이상 일하지 않는다. 퇴근은 이른 오후다. 오후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초븐에게 최고의 가치는 '가족과의 삶'이다. 가족과의 시간을 즐긴다. 자녀 교육이나 보육·노후 때문에 결코 현재를 희생하지도 않고,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러나 한국 박씨의 삶은 너무 피곤하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한다. 그렇게 일해도 저축은커녕 아이 학원 보낼 여유조차 없다. 여가는 낯선 단어다. 퇴근 후엔 부족한 잠 자기에 바쁘다. 세 식구가 저녁 식탁에 모여 대화를 나눈 것이 언제였는지도 까마득하다.

초븐이 말했다.
"저는 로또에 당첨되어도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습니다. 저에게 직장은 돈을 버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큰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니까요. 고용주와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저는 고용주를 문제가 생기면 함께 해결책을 찾는 파트너 관계라고 생각해요. 회사에서도 저를 소모품으로 여긴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렇다고 더 오래 일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가족과 보낼 시간이 줄고 내 삶의 질이 떨어진단 걸 잘 알아요. 전, 지금 아주 만족합니다."

◇ 특별취재팀
서의동 경제부 차장·조찬제 국제부 차장·김재중 문화부 기자·장관순·홍진수·송윤경 정치부 기자·이로사·유희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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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의 진실(기독교NGO) (출처 :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0&articleId=574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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