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중앙종회 제180회 임시회에서 종헌 9조2항을 개정해 군승은 30년 만에 다시 독신비구로 환원됐다. 폐지된 종헌 9조2항은 1980년 10·27 법난을 일으킨 군부가 강제로 만든 임시 집행부 ‘정화중흥 회의’에서 만든 법이다.
1968년 1기 군승 5명을 배출할 때 군승 자격은 독신 비구승이었다. 처음부터 이 자격규정은 논란거리였다. 군승 자격은 불교관련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대덕이 상의 승려였는데 이 자격에 합당한 스님이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결혼을 허용하자는 의견이 많이 나왔지만 거부됐다. 이유는 조계종이 청정 비구승단을 목표로 설립됐기 때문이다. 60년대 후반은 조계종에 합류한 대처측 ‘화동파’들과 화합 움직임, 정화 주도세력에 대한 공격 등으로 정화 이념이 퇴색 돼가던 때였다. 화동파들과 손잡는 문제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청담스님을 중심으로 한 정화 주체들은 종단 정체성을 훼손하는 조치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이미 1기생 5명 중에서 기혼자가 2명이나 포함될 정도로 결혼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종단은 알면서도 모른 체 했다. 2기생 비구들이 이 문제를 강하게 거론해 군승 파견 초기부터 결혼 문제로 시끄러웠다. 다시 현실론이 고개를 들었다.
‘독신’ 유지하다 수급 어려워 결혼 허용
장기복무자 늘며 문제 대두돼 독신 환원
논란이 되자 1970년 청담스님은 결혼은 안된다며 쐐기를 박았다. 1970년 12월5일 총무원은 군승준칙을 제정하면서 군승을 독신승으로 한정한다고 분명히 했다. 군승선발 기준을 ‘동국대 불교대 졸업 승려’로 규정한 것이다. 당시 제정한 군승준칙 제10조에 따르면 ‘군승 복무 중 혼인하거나 종단의 명예를 훼손한자’는 전역을 명하도록 강제 조항을 삽입 했다. 그러자 1기생 2명을 비롯한 기혼자 처리가 문제가 됐다. 종단은 준칙 마련 전에 임관한 기혼자는 후임 보충이 가능할 때까지 복무하도록 부칙 조항을 넣었다.
군승 비구화는 그러나 현실에 적용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렇잖아도 자원이 부족한데 비구로 한정하면 충당이 더 힘들기 때문이었다. 사실 처음 군승 파견 당시 종단 계획은 5년 간 군승을 70명으로 증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10년 뒤인 70년대 말에 겨우 40명을 넘길 정도로 할당된 자원도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종단이 강하게 나오자 몰래 결혼하거나 결혼을 숨기기도 했다.
결혼 문제는 4년 의무 복무기간만 채우고 조기 전역하는 군승들이 많은 초기에는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기생만 해도 결혼자 2명을 비롯해 4명이 조기 전역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조기 전역이 대세였다. 이 때문에 지금과 같은 진급을 둘러싼 잡음도 없었다. 오래 있어 진급하면 되레 감사해하는 분위기였다. 불자 장성들이 자질이 우수한 군승들에게 장기복무를 호소할 정도였다.
하지만 군승들의 수가 늘어나고 장기복무자가 나오는 등 군승단이 체계를 잡아가자 결혼문제가 다시 본격적으로 대두 됐다. 주로 비구승들이 이 문제를 거론했다. 그러자 비구승 출신이었던 임봉준(자광스님) 군승단장 시절 결혼 허용 여부를 놓고 군승단 내부에서 토론을 벌였다. 격론을 벌였지만 결론을 맺지 못하고 ‘종단의 분명한 결단이 있을 때까지 군법사 각 개인의 의사나 처지에 맡기고 오직 군종업무에만 전념토록 하자’는 식으로 매듭지었다. 결론을 내린 이유는 군포교가 결혼 여부와 큰 관련이 없다는 점과 자원 획득 어려움 등 현실론을 감안한 것이다. 특히 독신자들이 장기 복무를 꺼려한다는 점이 크게 고려됐다.
군승 결혼 문제는 결국 10·27 법난 후 만들어진 비상기구인 정화중흥회의에서 허용 방향으로 결론났다. 중흥회의가 만든 개정 종헌 제3장 9조 2항은 다음과 같다. “본종 승려로서 종단이 지정하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자(군법사에 한함)는 독신 규정이 적용되지 아니하며, 임무 수행의 완료와 동시 지계 구분을 재심하여 향유법계를 승서(昇敍) 또는 몰수 할 수 있다”
새 종헌을 만든 기구는 정화중흥회의 내 기획연구 분과위원이었다. 이 개정안은 1981년 1월7일 정화중흥회의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종정 중심제를 총무원장 중심제로 바꾸는 안과 군승 결혼 허용 규정 두 안이 본회의에서 격론이 벌어져 종헌 개정안을 놓고 재 심의하는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기획위가 내놓은 안은 거의 원안대로 통과 됐다. 군승 독신 허용 개정안을 제안한 주체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기획 연구 분과에는 스님들 외에 민간인들이 전문위원 자문위원 자격으로 참여해 이들이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결혼이 허용되면서 독신으로 지내던 법사들 까지 결혼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80년 전후해 임관했던 한 예비역 법사는 “독신으로 있어야 한다고 해서 결혼을 생각도 안했는데 갑자기 종헌이 바뀌어 결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결혼은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져 기혼이 대세다. 군승후보생들은 학교 재학 중 사귀다 자연스럽게 결혼에 이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결혼 연령대가 높아 같은 세대에 비해 아이들 나이가 어린 경우가 많다. 군승들은 장교 아파트가 나오지만 가족과 떨어져 보통 법당에서 홀로 거주한다. 새벽예불을 비롯한 각종 기도 등으로 법당을 비우기 힘들어 가족과 살 수 없는 실정이다. 결혼을 해도 스님과 같은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
박부영 기자
[불교신문 2511호/ 3월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