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창간 50年 ‘50大 뉴스’ 1980년대(불교신문 2010-11-07)   2010-11-10 (수)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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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창간 50年 ‘50大 뉴스’ 1980년대
“10.27법난, 신군부 검열로 계엄사 입장만 보도”




신구부의 최대 불교탄압 10.27법난으로 시작된 1980년대는 불교계 뿐만아니라 사회 저변에서 혼란과 갈등이 지속됐다. 교계 역시 1981년부터 2년새 4명의 총무원장이 바꿨으며, 원로회의가 해산하는 것에서부터 총무원 집행부와 중앙종회의 해체를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통합종단 최초로 종단법령집 발간 등 쾌거도 거뒀다.



신흥사 폭력사태…종단 혼란 여전

1981년 12월부터 1983년 12월말까지 4명의 총무원장이 바뀌었으며, 원로회의 해산, 총무원 집행부와 중앙종회의 해체 등을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혼란은 1983년 8월6일 신흥사의 신임주지가 부임하는 과정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는 사태까지 치닫게 된다. 1983년 8월14일자 1면 머리기사 ‘신흥사 사건계기로 밝은 종단 찾기로’에서 폭력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원로의원을 비롯해 총무원장, 종회의장 등 많은 스님들이 8월9일 사태수습방안을 모색했지만 이후에도 한동안 종단의 혼란은 계속 이어졌다.

 

비상종단운영회의 제도개혁 발표

1980년대 중반 불교계는 종단 안정을 위해 제도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개혁을 추진해온 비상종단운영회의 ‘7인 위원과 8인 실행위원’은 1984년 7월5일 종단 대표권자를 종정에서 총무원장으로 바꾸고 입법의결기구로 교정회의를 신설하는 제도개혁안을 발표했다. 불교신문은 1984년 7월11일자 1면 머리기사와 3면 해설기사에 종헌 개정안 내용과 성격을 중점 보도했다. 그러나 종헌 개정안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종헌개정안을 반대했던 이들이 1984년 8월1일 합천 해인사에서 모여 전국승려대표자회의를 개최하고 종헌 무효를 선언한 것이다. 불교신문 1984년 8월1일자 1면에서 일련의 과정들을 2면 사설, 3면 해설기사에 중점보도 했다.



영축총림ㆍ덕숭총림 개설

1984년 제7교구본사 수덕사에 덕숭총림, 제15교구본사 통도사에 영축총림이 개설됐다. 영축총림은 1984년 6월10일 월하스님을 방장으로 추대했다. 이어 11월 열린 제81회 정기중앙종회를 통해 수덕사에 덕숭총림이 설치하고 방장에 혜암스님을 추대했다. 불교신문 1984년 12월12일자 1면에는 “중앙종회는 수덕사에 덕숭총림을 설치키로 결의하고 초대방장에 혜암스님을 추대했다”면서 “수덕사의 요청에 따라 설립이 확정된 덕숭총림은 해인.조계.영축총림에 이은 4번째의 총림”이라고 설명했다.



승가고시법 통과…승니 자질향상

1985년 제82회 3월4일 열린 임시중앙종회는 불교 지도자 양성과 승단위계질서 확립을 위해 비구.비구니 스님들을 대상으로 전문 18조의 ‘승가고시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르면 고시는 6단계, 법계는 5등급으로 구분하고 있다. 5급 고시에 통과하면 사미.사미니계 수계자격이 주어지고 4급은 구족계 수계자격과 정덕법계, 3급은 중덕, 2급은 대덕, 1급은 종사와 대종사의 품계가 주어지도록 했다. 불교신문은 1985년 3월13일자 2면 해설기사를 통해 “승가고시법이 지난 4월 제82회 임시중앙종회에서 통과됨으로써 승니(僧尼)의 자질향상과 승단의 위계질서 확립을 위한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전국포교사단 1050명 결성

1985년 4월24일 포교활성화를 위해 대한불교조계종 전국포교사단(단장 암도스님)이 결성됐다. 그동안 포교원이 연수교육을 통해 배출한 1050명을 단원으로 구성된 전국포교사단은 상호정보 교류와 양질의 포교방법의 확산을 도모하고자 했다. 당시 전국포교사단은 창립총회 결의에 따라 지방조직을 확대했다. 불교신문은 1985년 4월24일 1면 기사에서 “사회가 요청하는 시대적 사명을 수임하고 부처님의 크신 원력을 이 땅위에 실현코자 한 자리에 모여 결성된 포교사단의 공식명칭은 ‘대한불교조계종 전국포교사단’”라고 평가했다.



통합종단 최초 종단법령집 발간

1985년 11월27일 종단 종도들의 숙원이었던 종단법령집이 발간됐다. 통합종단 출범 이후 사상최초로 집대성된 종단 법령집은 제1부 현행 종헌종법종규 제2부 관련참조법령 제3부 관련사회법규 제4부 관련판례 제5부 사찰주소록 등 5부로 구성돼있다. 종단 법령집은 종단행정 체계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큰 평가를 받았다. 불교신문은 1985년 11월27일 ‘조계종 종헌법령집 간행돼-1000여 페이지에 관계법령 총망라 파일식으로 꾸며’란 제목의 1면 기사를 통해 “종도들의 숙원이었던 종단법령집이 드디어 발간됐다. 이번에 발간된 종단법령집은 종단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보도하고 종단 법령집 목차 전문 게재했다.

 





해인사승려대회 불교자주권 요구

1986년 9월7일 합천 해인사에서 불교관계법 철폐 및 전면개정을 촉구하는 대규모 전국승려대회인 ‘9ㆍ7 해인사 전국승려대회’가 열려 주목을 받았다. 전국에서 2000여 명의 스님들이 운집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전국승려대회는 광복 이래 최초로 불교의 자주권 보장을 강력하게 요구한 대규모 집회였다. 불교신문은 1986년 9월17일 1면 머리기사에 ‘불교관계법 개(改)ㆍ폐(廢) 강력 주장’이라는 제목과 함께 현장, 해설기사로 중점 보도했다. 특히 사설을 통해 당시 사안을 불교의 자주성 회복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불교방송 법인설립…모금운동

1989년 3월2일 당시 문공부로부터 불교방송국 설립을 위한 재단법인이 승인됨으로써 한국불교 1600년의 신기원을 열게 됐다. 국내 최초로 설립되는 불교방송설립에 동참하고자하는 각계의 성금도 이어졌다. 6월4일 조계사에서 첫 모금법회이후 1989년에만 29억여 원이 모였다. 불교방송은 서울 마포 다보회관(현 다보빌딩)에 들어섰다. 불교신문은 1989년 3월8일자 1면 기사를 통해 “불교방송국 설립을 위한 재단법인 허가가 지난 2일 주무관청인 문화공보부로부터 승인됐다”면서 “무선국 허가를 얻은 BBS로 약칭되어 불러지게 돼서 금년새 모든 시설을 갖추고 시험방송에 들어가 내년(1999년) 정도 첫 방송을 발사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동국대 ‘부정입학 사태’ 파문

1989년 8월31일 동국대 부정입학과 관련, 6공화국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당시 동국학원 이사장 진경스님, 총장 지관스님을 전격 구속 수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불교계는 이를 6공화국에 의한 불교탄압으로 규정하고 35개 단체가 동참한 공동대책위를 구성했다. 9월6일 조계사에서 사부대중 1500여 명이 참석한 불교도대회가 개최됐다. 불교신문은 1989년 9월13일자 1면 머리기사에 ‘불교탄압 즉각 중지하라’는 제목으로 조계사에서 사부대중 1500여 명이 동참해 정부를 규탄하는 ‘범불교대회’를 중점 보도했다.




[불교신문 2670호/ 11월10일자]

2010-11-07 오전 12:31:28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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