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창간 50年 ‘50大 뉴스’ 1970년대(불교신문 2010-11-07)   2010-11-10 (수)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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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창간 50年 ‘50大 뉴스’ 1970년대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포교원 개원”




불교정화운동의 주역 청담스님이 입적(1971년)하면서 1970년대 불교계는 암울하게 시작됐다. 그러나 정화불사 관련 재판이 종결(1972년 3월)되고 프랑스에서 금속활자본 <직지심경>이 발견(1972년 5월)되는가 하면 조계종 포교원이 개원하고 부처님오신날이 공휴일로 제정되는 등 낭보들이 줄이었다. 중앙불교승가학원도 개원했다.



세계불교지도자대회 서울서 개최

종단이 주최한 가운데 1970년 10월10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세계불교지도자대회는 세계 21개국 250여 명의 고승들이 참가할 정도로 대규모 국제 불교행사였다. 이는 한국불교사 가운데 처음으로 열린 국제적인 불교대회로서 큰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불교계의 저력을 과시한 행사이기도 했다. 당시 1970년 10월11일자 1면 머리기사로 ‘전 세계불자들 한자리에’, 2면에는 ‘세계불교지도자대회의 역사적 성격과 그 사명’이라는 칼럼, 3면에는 ‘세계불교지도자대회 참석자 명단’ 등을 다뤘다. 또 10월25일자에도 대회 참석자들이 대구, 경주, 불국사, 통도사, 울산, 범어사 등을 방문한 내용을 다뤘다.



청담스님 입적…영결식 2만명 운집

한국불교정화운동에 일생을 바친 청담스님(1902∼1971)이 1971년 11월15일에 입적했다. 청담스님의 영결식은 종단장으로 11월19일 동국대 서울캠퍼스 운동장에서 2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 조계종이 탄생하고 기반을 다지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불교신문 초대발행인인 청담스님의 입적에 불교신문은 많은 지면을 배정해 조의를 표했다. 1971년 11월21일자 1면 머리기사에 ‘총무원장 이청담 큰스님 열반’과 2면 사설 ‘교계의 거성 떨어지다’ 뿐만 아니라 430호 전체지면의 90% 정도를 청담스님 입적기사로 다뤘다.



정화불사 관련 재판 ‘종결’

해방 후 계속된 불교정화불사 관련 재판이 종지부를 찍었다. 1962년 통합종단에 불만을 품은 측들이 법적 소송을 제기하여 10년간 이어졌다. 1972년 3월 대법원은 이탈인사들이 제기한 조계종 종헌 무효 소송에 대해 기각 판결을 내림으로써 통합종단의 법적 정통성을 확인했다. 불교신문은 1972년 4월9일자 1면 기사를 통해 “지난 3월31일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내림으로써 10년 동안 이끌어온 통합종단 이탈인사들의 법정투쟁은 이제 완전히 일단락을 짓게 됐다”면서 “1962년 10월 이래 법정을 통해 호소해보려던 이탈 인사들의 정통성과 통합종단의 불법성은 이제 두 차례의 대법원 판결을 통해 완전히 ‘이유 없는 것’으로 규정이 내려지게 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프랑스서 금속활자본 ‘직지심경’ 발견

1972년 5월2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책의 역사’ 전에서 <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이 발견됐다. 당시 파리 국립 도서관에 근무하던 한국인 사서 박병선 박사가 서고 한구석에서 직지를 발견, 유네스코 후원 도서전시회에 첫 선을 보였다. 불교신문은 1972년 6월4일자 1면을 통해 “프랑스 파리에서 지금 ‘책의 역사’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여기서 출품된 서적 <직지심경>이 바로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불교서로서 이것이 세계금속활자인쇄사상 최초의 것으로 밝혀져 세계적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

1975년 1월14일 정부 국무회의에서 당시 1000만 불자들의 염원이었던 부처님오신날이 공휴일로 제정됐다. 불교계는 ‘5000만 전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정부와 국민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불교신문은 1975년 1월19일자 1면에 ‘천만불자의 소원, 4.8 공휴일 마침내 제정’이라는 기사와 ‘성도일에 즈음해서’라는 사설을 통해 공휴일 제정을 축하했다. 이에 앞서 1973년 3월24일 수도변호사협회장 용태영 변호사가 서울고등법원에 ‘석가탄일 공휴권 확인 등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본격적인 공휴일 제정운동을 펼쳤다. 이에 불교신문은 4월8일자 1면에 ‘부처님오신날 공휴권 확인 청구소송’과 사설을 통해 비중 있게 다루며 여론조성에 나섰다.



장경호 거사 불교중흥기금 30억원 보시

동국제강 창업주인 대원정사 장경호 이사장은 1975년 7월10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호국불교와 대중불교 중흥에 써달라며 자신의 개인 재산 30여 억 원을 헌납하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장경호 이사장이 희사한 동산 및 부동산을 기금으로 같은 해 8월18일 재단법인 대한불교진흥원이 설립됐다. 불교신문은 1975년 7월20일자 1면에 ‘불교중흥위해 30억 헌납-대원정사 장경호 이사장 박 대통령에’와 3면에 ‘대원정사 등 설립 포교 앞장, 근검 절약의 실천가’라는 기사에서 장경호 이사장의 이력과 불교와의 인연 등을 상세히 다뤘다.



1977년 조계종 포교원 개원

조계종 포교원이 1977년 3월6일 조계사에서 개원식을 거행했다.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전하기 위해 설립된 포교원의 출범으로 홍법교화(弘法敎化) 사업이 탄력을 받았다. 초대 포교원장은 석주스님이 맡았고, 포교원법에 근거해 중앙상임포교사들을 중심으로 구성한 단(團)의 단장에 무진장스님, 간사에 선진규 법사가 임명됐다. 지금의 포교원은 1994년 종단개혁 이후 설립됐다. 당시 불교신문은 1977년 3월13일자 1면 ‘포교원 6일 역사적 개원식’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불교중흥의 대임을 담당하고 출범된 포교원은 앞으로 전국의 포교체계를 일원화, 보다 적극적으로 중생교화사업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고 의미를 밝혔다.



문선명 불교 비방 불교계 ‘공분’

1978년 6월 문선명 통일교 대표가 자신의 설교집을 통해 “예수님뿐만 아니라 석가모니, 공자도 문선명의 제자”라며 불교를 비방했다는 내용이 알려져 불교계 공분을 샀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인 혜정스님은 “상식이하의 망언”이라며 “1600여 년의 전통을 지닌 불교를 비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불교신문 1978년 6월18일자 1면 <속보>에는 “서울은 물론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도시에서는 대소(大小) 법회를 통해 문선명 씨의 망언에 대한 규탄대회를 열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주 낭산 관음보살 입상 발견

1978년 7월3일 경주시 배반동 낭산 서쪽기슭 중생사(衆生寺) 서쪽에서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관음보살입상 몸체를 발견해 화제를 모았다. 발견당시 불상의 몸체는 개인소유 밭둑에 3분의 2 이상 파묻힌 상태로 방치돼 있었던 것을 주민의 신고로 세상에 선보이게 됐다. 이후 국립경주박물관이 1997년 박물관에서 전시해온 머리 부분을 부착해 복원했다. 복원된 불상은 높이 3.76m, 어깨 폭 0.9m, 대좌 높이 0.7m의 규모로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하고 있다. 불교신문은 1978년 7월16자 1면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국보급 관음보살 입상발견’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입체불상 중 최대의 것”이라고 보도했다.



서울에 중앙불교승가학원 개원

김포 중앙승가대학교의 학교법인 중앙불교승가학원이 1979년 4월14일 서울 돈암동 보현사에서 개원했다. 당시 2년제 학교인 중앙불교승가학원에 연수부 42명, 교양부 18명 등 60여 명이 입학했다. 이어 3월18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 보현사를 학사로 개강했다. 현 중앙승가대학교의 출발이다. 이후 1989년 7월11일 학교법인 승가학원의 설립인가를 받았다. 불교신문은 1979년 4월22일자 1면에 ‘중앙불교승가학원 개원’, 4월1일자 3면에 ‘도재양성에 새바람’, 3월18일자 7면에 ‘중앙불교승가학원 개원’ 등을 연속적으로 다루고 있다.


 

[불교신문 2670호/ 11월10일자]

2010-11-07 오전 12:38:09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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