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신문 창간 50年 ‘50大 뉴스’ 1960년대
통합종단 출범…“왜색불교 척결.淨化운동 본격”
불교신문은 창간 반세기를 맞아 함께 걸어 온 한국근현대 불교사를 되돌아보기 위해 50대 뉴스를 선정했다. 뉴스는 매년 보도된 ‘올해의 10대 뉴스’를 기초로 선정했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불교신문에 실린 기사를 10년 단위로 10건씩 정리했다. 정리=허정철 기자
1960년 1월1일 불교신문 창간과 함께 1962년 통합종단이 출범하고 종단은 정화운동을 본격화하면서 한국불교의 내실을 다졌다. 종단안정과 더불어 1963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창립, 동국역경원 설립, 최초의 군승 탄생 등 다양한 영역에서 포교활동이 활기를 띠었다. 베트남 현지에 참전병을 위한 한국법당도 조성됐다.
불교신문 전신 ‘대한불교’ 창간
1960년 1월1일 불교신문의 전신인 <대한불교(大韓佛敎)>가 창간됐다. 불교계 최초의 언론이 탄생한 것이다. ‘대한불교사(大韓佛敎社)’가 발행 주체로, 종단에서 발간했다. 초대발행인 겸 사장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청담스님, 부사장은 경산스님, 주필은 이종익 박사가 맡았다. 당시로는 드물게 한글제호를 사용했으며, 대판 2면 월간으로 선보였다. 청담스님은 창간사에서 “불교는 앞으로 더욱 많은 중생에게 포교하여 모든 국민에게 영적 구원을 주고 건전한 사회건설에 공헌할 사명을 띠고 있다. 그의 일단으로서 우리 조계종단의 기관지 ‘대한불교’를 창간한다”면서 “지면확장 실현은 물론 월간을 주간지로 발전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화의 정당화…육비구 할복
1960년 11월24일 오후3시 서울 서소문 대법원장실에 들어가 성각.성우.월탄.진영.도명.도헌스님 등 비구 스님 6명이 할복하는 ‘대법원 6비구 할복 사건’이 발생했다. 대법원에 들어간 스님들은 정화의 정당성과 이유를 설명하고 미리 준비해간 칼로 복부를 찔렀으며 순교 소식을 듣고 달려온 400여 명의 스님 재가자들이 대법원에 들어가 소동을 일으켰다. 당시 1960년 동아일보는 올해의 10대 사건으로 대법원 할복 사건을 꼽았다. 불교신문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호외까지 발간하며 이 사건을 상세히 보도했다.
통합종단 출범…정화운동 본격화
1960년대 초 불교계의 가장 큰 화두는 왜색불교를 척결하기 위한 정화운동이다. 불교신문은 대처승이 아닌 청정비구승단을 이루기 위해 불교계 안팎의 여론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다. 마침내 1962년 2월28일 개최한 비상종회에서 신종헌(新宗憲)을 3월6일자로 통과, 3월25일 공포되면서 8년간 지속돼온 불교정화운동이 일단락됐다. 1962년 4월1일자 1면 머리기사에 ‘드디어! 종단은 정화되다’라는 제목으로 불교재건비상종회에서 독신출가자에 한해 승려자격을 인정한다는 대한불교조계종 종헌이 수정통과된 것을 당시 2개면 가운데 절반분량인 1면 전체를 이와 관련해 다뤘다. 또 비구중심의 통합종단 출범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대학생불교聯 창립…청년포교 활기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가 1963년 9월22일 동국대 서울캠퍼스 중강당에서 500여 명이 동참한 가운데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대불련은 3대 강령을 채택하고, 한국불교 중흥의 선구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서울대, 동국대 등 서울 시내 17개 대학과 3군사관학교의 불교학생회 생도들이 참여한 대불련은 이후 대학생 포교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며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1963년 10월1일자에는 “진리의 벗과 얼이 되어 동방의 등불이 될 것을 스스로 다짐하는 대학생불교연합회가 새로이 발족을 보았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역경원 설립…운허스님 초대원장
도제양성, 역경, 포교 등 종단 3대 중점사업 가운데 가장 먼저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은 역경분야였다. 동국역경원은 1963년 2월28일 제정 통과한 역경위원회법(譯經委員會)을 모태로 출범했다. 종단이 역경 관련 조항을 법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통합종단이 출범하고 중앙종회가 발족하면서 곧바로 시작했다. 이후 1964년 7월21일 운허스님을 초대원장으로 모신 가운데 동국역경원을 설립했다. 역경원 개원식은 7월이었지만 이미 4월부터 동국대에 현판을 걸고 업무를 시작했다. 불교신문은 당시 “동국역경원의 발족은 획기적인 쾌사(快事)”라면서 “팔만대장(八萬大藏)의 법보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은 민족사상 의의 깊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1966년 불기 세계공통기년 채택
1966년 8월11일 열린 조계종 제13회 임시중앙종회에서는 불기(佛紀)를 세계공통기년에 맞춰 서기 1967년을 불기 2511년으로 할 것을 결의했다. 1957년 네팔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 채택한 ‘불탄기원통일안’을 받아들여 그동안 사용하던 불기 2993년을 불기 2510년으로 변경한 것이다. 불교신문은 1966년 8월21일자 1면 머리기사 ‘제13회 임시종회-2500년대로 불기(佛紀) 고쳐’라는 기사와 1967년 4월23일자 사고(社告)를 통해 “193호부터 불기를 2994년에서 2510년으로 변경한다”고 공지했다.
석가탑 파손…수습 중 다라니경 발견
1966년 9월 경주 불국사 석가탑(국보 제21호)이 도굴꾼에 의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불교신문은 “세계적인 성보 석가탑이 파손돼 원형 그대로 복구하기는 불가능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불국사 이외에도 지역 유명 사찰의 고적만을 노렸던 도굴범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검거됐다. 당시 도굴로 인해 석가탑 2층 탑신의 서편이 떨어져 나가고 3층 탑신에 금이 생겼으며 3층 동쪽 탑신의 모서리에 파편 조각처럼 여러 군데가 떨어져나는 상처를 입었다. 같은 해 10월 복원을 위해 석가탑 해체수리 작업이 진행됐고, 수습과정에서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해 불교유물이 발견되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베트남 참전병 위해 현지 한국법당 창건
조계종은 베트남전에 투입된 불자장병과 베트남 현지 불자들을 위해 베트남 나트랑시에 한국법당인 불광사를 1967년 10월6일 창건했다. 불교신문은 1967년 10월22일자에 ‘월남 나트랑시 불광사에서 한국불상봉안식-신 대사, 채명신 장군 참석’ 기사를 다루고 있다. 또 7월23일자에는 ‘한.월(越) 두 불상 모시기로-십자성부대 사찰에’ 기사와 7월16일자에 ‘월남 십자성부대 사찰의 불상봉안 국방부서 전담’이라는 기사를 다뤘다. 그리고 이범준 전 십자성 부대장의 칼럼 등을 싣고 있다.
군승제 도입…제1기 군승 탄생
불교계의 오랜 숙원인 군승제가 실현돼 5명의 군승이 탄생했다. 종단은 1960년부터 군승제 도입을 추진했다. 종단과 대불련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1968년 5월24일 국방부령 124호로 ‘군승장교요원선발규정’이 공포됐다. 국방부는 1968년에 육군에 5명을 배당, 종단에 추천을 요청했다. 이에 종단은 군승후보 교육원 출신 20여 명 가운데 권기종, 김봉식, 이지행, 권오현, 장만수 등 합격생 5명을 국방부에 추천해 제1기 군승장교 최종합격자로 선발했다. 제1기 군승은 소정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1968년 11월 임관했다. 불교신문은 광주 육군보병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을 취재한 1968년 12월8일자를 통해 군승 제1기승의 역사적인 사명감을 촉구했다.
금오스님 입적…종단장 엄수
종단 총무원장을 역임하며 한국근대 불교의 큰 족적을 남긴 금오스님(1896∼1968)이 1968년 10월8일 오후7시 법주사에서 열반에 들었다. 법랍 56년, 세수 73세. 금오스님의 영결식은 같은해 10월12일 법주사에서 종단장으로 엄수됐다. 불교신문 1968년 10월6일자 1면에‘금오대종사 입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금오스님은 전국 사찰을 순례하며 구도행과 후진양성에 힘쓰고, 한국불교 정화당시 효봉.동산스님을 비롯한 고승들과 정화불사 선봉에 나서서 심혈을 기울였다”면서 스님의 원적을 추모했다.
[불교신문 2670호/ 11월10일자]
2010-11-07 오전 12:43:38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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