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의 달, 불교는 없었다(법보신문 2009-06-29)   2009-07-01 (수)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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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달, 불교는 없었다
[집중취재]순국 스님 추모 전무…국가 행사도 불참
기사등록일 [2009년 06월 29일 13:24 월요일]
 

6월 호국보훈의 달에 불교는 없었다. 한국불교가 호국불교라는 독특한 이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국보훈의 달인 6월 한 달간 중생이 살고 있는 국토를 악(惡)과 전쟁으로부터 보호해 불교적 이상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려 했던 순국 스님들의 뜻을 기리고 계승하는 행사 자체가 전무했다. 단지 군종교구와 몇몇 사찰에서 호국영령 추모 행사가 있었을 뿐이다.

순국 스님들이 홀대받는 것은 비단 추모행사가 전무한데 그치지 않는다. 당 태종의 침입에 맞섰던 고구려 3만 승군을 비롯해 거란의 침략에 대항했던 승장 법언(法言) 스님 등 9천 승병, 몽고군 침입을 온몸으로 막고 충주산성을 70일간 수호했던 승장 김윤후 등은 그 어디서도 업적을 기리는 예가 없었다. 또 임진왜란 때 왜군에 맞섰던 의능, 영주, 의엄, 설미, 법정 스님 등에 대한 연구나 조명사업도 전무한 실정이다.

이처럼 순국 스님들을 기리는 불교계 행사는 물론 개개인의 활약과 정신을 조명하는 연구사업이 전무한 가운데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영규 스님 위패가 봉안된 칠백의총에서 열린 추모 문화제에는 불교계 인사들이 전혀 참석하지 않는 등 그나마 마련된 추모행사에 대한 관심마저 미미한 실정이다.

국난으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고 불국토 건설을 위해 호국의 의지를 높이 불살랐던 순국 스님들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서도 불교계 안팎에서 이처럼 홀대받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한국불교의 독특한 전통인 호국불교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연구·조명사업은 물론, 오늘날 호국불교가 어떠한 형태로 발현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경전에 나타난 ‘호국’의 의미
호국은 대승불교 실천…정권 추종은 ‘반호국’
기사등록일 [2009년 06월 29일 13:39 월요일]
 

‘산 생명 죽이지 않는다(不殺生)’는 계율을 지켜야 할 출가수행자가 살육의 현장에 뛰어드는 것은 그 자체로서 슬픈 일이다. 율장에서 가장 엄격히 금하고 있는 ‘바라이죄’를 어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해 스님의 말처럼 ‘쇠퇴한 사회에 개인의 행복이 있을 수 없고, 패망한 국가에 국민의 자유가 있을 수 없다’는 것 또한 냉혹한 현실이다. 외세의 침략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무참히 살해되는 것을 보면서도 ‘불살생’ 계율만 고집한다면 이 또한 대승의 정신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나섰던 사명대사가 ‘형봉(衡峰)에서 토란 굽기 실로 내 소원인데/ 벼슬에 살찐 말이 어찌 본분이랴. 장해(瀆海) 십년 동안 부질없이 수자리[戍衛] 살았구나. 향성(香城) 어느 날 돌아갈 기약을 정할는지….’라고 회의하면서도 끝내 전쟁터를 떠나지 못했던 것도 ‘고통 받는 중생에 대한 지극한 연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분율』이나 『범망경』 등 율장에서는 출가자는 살생도구를 준비해서도 안 되고 군사의 사절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못 박는다. 심지어 칼 찬 사람에겐 설법조차 말라는 구절까지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종종 이런 율장의 표면적인 행위규정을 넘어서 적극적인 실천을 지향한다. 그 중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과 『금강명경』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들 경전에서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지키려는 국가지도자의 지침서로 일컬어진다.

정병조 동국대 교수는 인왕(仁王)의 어질 ‘인’자는 참을 ‘인(忍)’자와 동음(同音)으로 풀이한다. 즉 어질다는 것은 비판과 칭찬 사이에 동요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반야를 체득할 때 비로소 국토와 국민을 평안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토라는 개념 또한 단순한 국경선의 의미를 넘어 부처님의 진리가 살아서 숨 쉬는 곳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뜻임을 강조한다.

이런 측면에서 호국의 참뜻은 일반적인 국방이나 애국의 개념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오히려 호국불교는 정법을 수호하고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가장 적극적인 대승의 보살행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호국불교는 정치적으로 변질되거나 왜곡되기도 십상이다.

신라시대 일부 대찰 스님들이 칼을 들고 민중들과 다투거나 고려시대 스님들 수백 명이 무신정권 세력과 노상에서 전투를 벌였던 일, 또 일제강점기 불교계가 호국불교라는 이름으로 전투기를 헌납하고 해방 후에도 사회의 아픔을 외면한 채 무조건 정권을 추켜세웠던 일들은 호국이 아니라 반호국이라는 지적이 많다. 참다운 호국불교의 이념은 단순한 민족주의를 넘어 불교의 정법주의, 자비주의, 평등주의의 실현을 통한 불국토 건설에 있는 까닭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호국불교의 어제와 오늘
중생구제 차원서 순국…사회참여로 승화
일부 기득권, 권력 유착 수단으로 왜곡하기도
기사등록일 [2009년 06월 29일 13:45 월요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서 순국 스님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전무한 가운데 조계종 군종교구는 6월 21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호국영령영가천도법회’를 열어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6월 호국보훈의 달에 한국불교의 독특한 특징인 호국불교의 전통을 세운 순국 스님들이 홀대를 받고 있는데는 호국불교에 대한 이해 부족과 왜곡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수많은 외침으로 중생들이 핍박받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형성된 호국불교는 한국불교만의 독특한 전통이다. 불교가 ‘불살생’을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적의 침략으로 인해 중생들이 생명을 위협받는 고통의 삶을 살아가야만 했기에 인천의 사표인 스님들이 직접 무기를 들고 나설 수밖에 없었던 역사에서 유래한 것이 바로 호국불교다.

그러나 스님들이 전장에 나선 것은 중생의 편에서 중생이 안고 있는 절박한 고통을 헤아려 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왕조나 정치권력에 다가서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한국불교에서 호국은 불교가 전래된 이래 삼국시대부터 시작됐다.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침입해 수많은 백성의 삶이 파탄에 빠지게 됨에 따라 3만 명의 승군이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고려 현종 1년(1010)에 거란군이 서경을 침략하자 승장 법언이 9천명의 승병을 이끌고 나가 싸웠고, 고종 3년(1216) 또다시 거란이 국경을 침범했을 때 승군 수백 명이 전투에 참여했다.

그리고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는 승장 김윤후가 몽고 장군 살례탑을 직접 활로 쏘아 죽이고 충주산성을 70일간 수호한 끝에 적을 퇴각시키기도 했고, 공민왕 8년(1359)에는 홍건적이 침입하자 전국 사원이 말을 군용으로 내놓고 승군이 직접 전투에 참여한 예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는 널리 알려진 대로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불교가 핍박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산, 사명, 영규, 처영 등이 승군을 일으켰고 수많은 스님들이 함께 전장에 나갔다. 또한 병자호란 때도 각성 스님과 명조 스님 등의 의승군이 활약해 외침을 막아냈다.

이렇게 이어진 호국불교는 어디까지나 화택의 현실세계를 정토화해서 불국토를 건설하겠다는 원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국불교를 빙자한 역사 왜곡도 적지 않았다. 승군이 중생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활동할 당시에도 왕조와 지배계급의 집권논리를 옹호하며 권력에 빌붙는 등 호국을 가장한 세력들이 존재했고, 결국 이들의 왜곡된 호국불교관은 권력으로부터의 불교탄압을 부르는가 하면 백성들로부터 얻었던 신망을 잃어버리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리고 호국불교의 향수에 젖은 왜곡 행태는 군사정부시절 ‘국태민안’을 빙자한 권력유착형 법회로 나타나기도 했다. 심지어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이던 1975년에는 조계사에서 스님과 신도 5000여 명이 모여 ‘나라 안전을 위한 호국승군단’ 발단식을 갖고 ‘불법을 통한 호국안보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호국불교 왜곡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어 한국불교계는 곳곳에서 호국영령의 혼을 천도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법회를 봉행했으나, 이 역시 순수하게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보다 정치권력과의 우호관계 형성을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어쨌든 호국불교는 중생의 고통 극복을 위한 스님들의 순국과 불교계 기득권 세력의 권력유착형 왜곡이 공존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호국불교는 여전히 지속되는 일부의 왜곡된 행태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사회참여 형식으로 승화되고 있다. 오늘날 호국불교 사례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 불교계 역대 최대규모인 1500여 명 스님들의 시국선언이다. 스님들의 시국선언은 국민들이 잃어 가는 자유를 되찾는데 기여하기 위한 중생심의 발로라는 점에서 호국의 한 형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불교계가 국민들 삶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사회정의 및 경제정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나 해외구호사업 및 국내 복지사업 역시 호국불교의 또 다른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순국 스님 업적 평가·추모는 불교계 의무”
의승병 충혼위령탑 건립 추진
옥천 가산사 주지 지승 스님
기사등록일 [2009년 06월 29일 14:13 월요일]
 

충북 옥천 가산사에 충혼위령탑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이 절 주지 지승 스님은 “조선시대 수많은 스님들이 나라를 위해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바쳤지만 억불정책으로 인해 정당한 평가와 대접을 전혀 받지 못했다”며 “그 분들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하고 정리해서 정당한 평가와 추모를 하는 일은 오늘날 우리 불교계에 주어진 의무”라고 강조했다.

지승 스님이 순국 스님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곳 가산사의 아픈 역사에서 비롯됐다. 신라시대 창건된 가산사는 오랜 세월 조용한 암자였으나 임진왜란 때 영규대사가 조헌 선생과 함께 이곳에서 승병과 의병을 훈련시키면서 호국사찰로 유명해졌다. 그 후 영규대사와 조헌 선생이 청주성을 탈환하는 등 큰 공을 세웠으나 금산 영곤평 전투에서 모두 순국하자 가산사에서 이분들의 영정을 모시고 매년 음력 8월 18일 추모행사를 열어왔다.

“영규대사와 800명의 승병들은 조헌 선생과 금산에서 똑같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지만 그 이후의 상황은 완전히 다릅니다. 의병들의 시신은 그 후 잘 모셔져 지금까지 추모를 하지만 승병들의 주검은 까마귀밥이 됐는지 어떤지 아무도 모릅니다. 똑같은 순국임에도 스님이라는 이유로 엄청난 차별을 받았던 것이지요. 심지어 얼마 전 금산에서 현대판 비를 세웠는데 영규대사 얘기는 단 한 줄 밖에 없더군요.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우리 불교계조차 이토록 무관심한데….”

지승 스님은 지난 10여 년 전부터 이곳 가산사 일대에 순국충혼위령탑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조계종 원로, 총무원장, 교구본사 주지, 종회의원 스님들을 비롯해 17명의 국회의원이 서명한 위령탑 건립을 국회에 청원했으나 담당위원회가 차일피일 미루다가 16대 국회가 해산되고, 17대 국회에도 다시 청원했으나 또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지승 스님은 “영규대사와 조헌 선생은 그 지향하는 바가 달랐으나 대의 앞에서는 서로 격려하고 뜻을 함께했다”며 “충혼위령탑 건립은 남북갈등, 지역갈등, 계층갈등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불사로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국난극복 이끌었던 호국 스님들
살수대첩서 울릉도 수호까지 모두 ‘견위수명〈見危授命〉’
휴정·유정 스님 외에도 잊혀진 ‘호국승려’ 다수
기사등록일 [2009년 06월 29일 14:20 월요일]
 
 
임진왜란 당시 금산에서 장렬히 순국한 승장 영규 대사와 조헌 선생의 전투장면을 그린 기록화.

한국사에서 ‘호국불교’하면 청허당 휴정(1520~1604) 스님이나 사명당 유정(1544 ~1610), 기허당 영규(?~1592) 스님 등을 흔히 떠올린다. 휴정 스님은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승병을 모아 구국의 횃불을 치켜든 고승이었고, 유정 스님은 평양 수복을 비롯해 의령, 울산, 순천 등에서 큰 전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훗날 일본에 건너가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명을 인솔해 귀국한 임진왜란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영규 스님 또한 800여 명의 의승군을 이끌고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성 탈환에 성공한데 이어 군사적 요충지인 금산에서 왜적에 맞서 장렬히 전사했던 승병장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스님 외에도 1700년 한국불교사에서 나라와 민중을 위해 죽비 대신 칼자루를 움켜쥔 스님들은 삼국시대부터 등장한다. 그리고 그 숫자 또한 결코 적지 않다. 다만 이름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갔거나 혹은 후대 사람들이 애써 기억하지 않을 따름이다.
『고려사』 제113권에는 당태종의 침략을 물리친 3만의 고구려 승군(僧軍)이 소개돼 있으며, 수나라를 무찌른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성공 배경에도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7명 스님들의 지대한 공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신라 태종 무열왕 때 도옥 스님은 “승려된 자로 위로는 도를 닦아 마음을 밝히고 아래로는 착한 일을 한 것이 없으니 싸움터에 나가 목숨을 바치는 것이 낫겠다”며 적진에 뛰어들어 장렬히 전사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고려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김강녕 경기대 교수에 따르면 『고려사』에는 스님들이 요·금·원제국의 침략에 맞섰던 군사적인 호국사례가 14건이나 나타난다. 여기에는 1010년 거란이 재침했을 때 법언(法言) 스님 등 승병들이 적군을 요격해 거란에게 포위당한 고려군을 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104년엔 국경을 침략해 민간인을 학살하던 여진족의 정벌을 위해 스님들로 구성된 항마군이 편성돼 있었을 정도다.

또 출가자였던 김윤후는 몽고군이 쳐들어오자 지금의 용인시 남사면에 위치한 처인성(處仁城)으로 몸을 피한 뒤 입보민(入保民)들을 지휘해 적장 살리타를 없애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음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 뿐만 아니다. 1254년 몽고가 다시 쳐들어왔을 때는 당시 성주산성을 지켰던 승장 홍지(洪之) 스님을 비롯해 이후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때에도 승병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음을 역사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호국불교의 전통은 불교를 탄압했던 조선시대에도 변함없이 계속됐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누란의 위기를 겪으며 승병의 역할은 더욱 빛났다. 휴정, 유정, 영규, 처영 스님 외에도 당시 무기를 만들고 성을 쌓았던 법견 스님, 죽산성 수비대장을 맡았던 영주 스님, 월계산성을 쌓았던 견우 스님, 경상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해안 스님, 평양성 탈환 전투에서 활약했던 인오 스님과 천연 스님,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수비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한 법정 스님, 파사성을 축조했던 승군사령관 의엄 스님, 의승을 모집하고 권율 장군의 지휘 아래 적과 싸우다 입적한 설미 스님 등 수많은 출가수행자들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온몸을 꽃처럼 바쳤다.

특히 자운 스님과 옥형 스님은 이순신 장군과 뜻을 같이해 300여 명으로 구성된 의승수군을 결성해 함께 싸우고 군량미까지 조달했으며, 이 충무공이 서거한 후에는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여수 석천사를 창건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스님들은 군량미를 수송하거나 성을 쌓는 일을 담당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발발한 병자호란 때에는 각성 스님과 명조 스님 등 4000여 명의 의승군이 또다시 큰 활약을 펼쳤으며, 이후에도 남한산성과 북한산성 등을 수호하는 중대한 역할을 맡았다.

이밖에도 조선 숙종 때 안용복과 함께 일본으로부터 울릉도를 지켜낸 스님들도 있다. ‘떠돌이 승려’로 기록돼 있는 뇌헌, 승담, 연습, 영률, 단책 스님 등 5인이 바로 그 주인공으로 오늘날 불교계에서조차 비석하나 세워주지 않지만 나라를 지킨 대표적인 호국승려임은 분명하다.

김선근 동국대 교수는 “지난 1700년 한국불교사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보여주었던 ‘견위수명(見危授命)’의 호국불교 정신은 참다운 대승불교의 실천과 다르지 않다”며 “호국불교의 부정적인 면이나 왜곡된 모습이 있다하여 호국불교 그 자체까지 부정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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