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으로 ‘조계종’이 있는가 |
| - 봉은사 사태 무엇을 남겼나 |
'봉은사의 조계종 직영사찰 전환에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제기로 촉발된 봉은사 사태가 발생 8개월여만에 마무리됐다.
명진스님은 떠났고 조계종총무원은 부주지였던 진화스님을 주지로 임명했다.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보여 온 명진스님이지만 이번만은 봉은사 홈페이지에 신도들에게 당부의 말씀까지 남긴걸 보면 사건으로서 상황은 종결된 듯 싶다.
봉은사사건은 2010년 불교계와 한국사회를 뜨겁게 흔들었다.
명진스님의 ‘정부여당과 청와대가 종교 문제에 개입했다’는 주장은 이명박정부에 곱지 않은 우리 사회의 시선들과 함께 맞물리면서 불교계의 의지로 제어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일로 치달았다. 매주 일요일이면 명진스님이 이번에는 무엇을 터트릴까?하며 귀를 쫑긋 세우는 이들은 비단 불자만은 아니었던 듯 하다.
때로는 쇼킹한 폭로 내용으로 우리 사회 이슈의 중심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진위와 시비의 공방으로 감정의 골까지 깊게 패이게 했던 봉은사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개인적으로는 ‘조계종이라는 조직의 정체성 찾기가 얼마나 시급하고 절실한 일인지를 확인한 사건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조직이라는 것은 공동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구성된 협동체계를 말하며, 유지를 위해 내부 구성원 합의로 규칙을 정하고 지킴으로서 유지 관리된다. 조직정체성은 한 개인이 조직이라는 집단에 속하여 있다는 소속감을 말하는 것으로, 정체성이 긍정적 방향으로 정립된 경우는 소속된 조직에 대한 긍지와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조계종은 그 구성원의 수나 연륜으로 볼 때 국가 다음으로 규모가 큰 모임체인데, 봉은사 사태를 겪으면서 그 규모와 연륜에 걸맞은 조직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심하게 의심 받게 됐다. 즉, 1600년 유구한 전통을 이야기하고 2천만 불자를 자랑하는 한국불교가 그에 걸맞은 구성원들간의 정체성 없음이 봉은사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조계종 중진승려인 명진스님은 ‘탈종하겠다’, ‘승적을 찢어 버리겠다’는 말을 대중앞에서 거침없이 내뱉었을 뿐만 아니라 행정수장인 총무원장을 향한 폭언은 그야말로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을 기세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번 사건에 드러난 재가신도들의 모습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주지스님, 우리 절은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것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만족할 만한 것인지 의문이다 - 우리 종단은 없었다. 봉은사 신도들 역시 격앙된 감정속에서 ‘우리끼리 잘 하자’, ‘봉은사는 조계종을 떠날 것이다’는 주장을 너무도 쉽게 했다.
중진승려인 명진스님의 언행, 조계종 최고의 수말사중 하나인 서울 강남봉은사 신도들이 보여준 모습은 현행 출가자 교육과정에 종단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한 프로그램이 얼마나 있고, 재가신도들 위한 교육 역시 교리에 대한 이해중심 이외에 무엇이 있나 되짚어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봉은사사건을 첫 의제로 부여받은 화쟁위원회는 <직영사찰제도 종합적 개선방안 및 봉은사 운영과 문제해결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직영사찰 재산관리인 임기 4년 보장 △인사추천위원회를 통한 재산관리인 후보 추천 후 총무원장 임명 △독자적 인사기준에 따라 2년 주기로 평가 실시와 기준 미달 시 면직 △직영사찰 재정 운영에 종단 목적사업 우선 적용 등을 총무원과 봉은사에 제안했다.
제안 내용 전체가 행정절차에 대한 권고를 중심으로 하고 있을 뿐 종단 정체성 확립을 위한 대안마련을 지적하고 있지 않아 유감스럽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출범한 조직이라도 끊임없는 연구와 관리로 구성원들이 상시적으로 함께 공유하는 정체성을 각인시켜 줄 수 없다면 외형적 모양새가 아무리 그럴싸 해도 빛 좋은 개살구일 뿐 이다.
화쟁위가 제안한 권고안을 풀어갈 주체가 총무원이라면 현재 간과되고 있는 조계종의 정체성 문제는 교육원과 포교원의 숙제가 될 성 싶다. 사건은 종단의 인사권 문제를 담당하는 총무원에서 시작됐지만 근원적 문제해결의 과제는 종단 승가교육과 신도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원과 포교원의 몫이 되었다.
교육원이 교육개혁을 이야기하고 있고 포교원이 신도조직 결집에 올인하겠다는 사업목표를 세우고 있다. 승가교육제도와 프로그램의 현대화나 정예화된 신도대중의 결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조계종의 당면 과제다. 그러나 그 정예화 할 신도나 현대화된 교육을 통해 시대를 이끌 눈푸른 납자들이 ‘조계종’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갖지 못한다면 ‘조직으로서 조계종’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봉은사 같은 유사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할 수 있는 종단구조다. 한번 넘어진 돌부리에 두 번 다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 그 첫 단추가 조직으로서 ‘종단의 정체성 찾기’ 이기를 권하고 싶다.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더 깊게 문제를 지적하고 바람직한 대안까지 이야기 하기에는 힘이 부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단 관계자들이 ‘골치 아픈 문제 끝났다’ 정도로 생각하고 이전처럼 그냥 지나가면 어쩌나 하는 기우에서 생각을 내 놓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