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인종차별부터 없애자(뉴시스 2008-11-17)   2008-11-23 (일)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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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우리 안의 인종차별부터 없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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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 기사입력 2008.11.17 12:34뉴욕=노창현 특파원

미 대선이 끝난 지 열흘여가 지났지만 사상 최초의 흑인대통령 버락 오바마에 대한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내 주변에는 남아 있다. 오바마 당선 이후 흑인들을 보면 어쩐지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비단 흑인들만이 아니다. 소수계 대부분이 오바마의 당선을 자기 일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본다.

플러싱의 한인 업체에 근무하는 한 중남미 남성은 "오바마 당선으로 기분이 좋냐?"는 질문에 "너무너무 기쁘다"며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웠다. 한인은행의 경비원인 한 인도계 남성은 "아들이 이라크에서 3년째 복무하고 있다. 오바마가 이라크전을 끝낸다고 했으니 머잖아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미국 사회의 오랜 금기를 통쾌하게 깨뜨린 오바마 덕분에 이제 소수계는 그들을 가로막았던 '유리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뻔히 보이지만 아무리 다가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유리벽' 앞에서 좌절한 우리의 2세, 3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미국에 오기 전까지 인종차별은 남의 일로만 알았다. '단일민족'이라는 보통명사의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외모가 구별되지 않는 곳에서 살다가 미국이라는 신대륙에서 '소수계로 전락(?)'하는 기분을 깨닫기까지는 도착 후 한나절이면 충분했다.

우리는 이민국 관리 앞에서 공연히 주눅들어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던 '언어장애인'이요, 사소한 관행을 몰라 숱한 시행착오를 겪는 '문화장애인'을 체험한 이민 1세대였다.

노골적인 인종차별은 없다지만 알게 모르게 가해지는 차별 속에 하루에도 열두번씩 고국에 돌아가고픈 생각도 들지만 서푼어치도 안되는 오기로, 혹은 현실적인 이유로 보따리를 싸지 못한 것이 이민 1세대였다.

미국 사회 속에서 소수계로, 힘 없는 유색인종으로 살아가다 보니 여타 소수계와의 연대감도 커지고 한국에 있을 적 나도 모르게 가한 차별의식은 없었는지 반성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민 1세대라고 다 똑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대선 직전 뉴저지의 한인 시의원이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인 유권자 중 노인들은 흑인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공인이 사석에서도 주의해야 할 말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여, 한인들이 인종차별적 사고를 갖고 있다는 의식을 표출한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가슴 한 편에 비수처럼 파고 드는 아픔은 실제로 흑인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우리가 정서적으로 가깝게 생각할 이들이 사실 흑인일텐데 왜 그들을 꺼리는 이들이 많다는 말일까.

한인사회 업종의 특징상 소매업이 흔하고 흑인 거주지에서 장사하는 이들이 많으니 직접 부딪히는 이들과의 갈등이 생길 여지는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단일민족이라는 객적은 우월감, 흑인사회에 대한 선입관, 인종차별 의식이 그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본국에서 대조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동남아 출신의 근로자들이 유입되고 농촌 총각과 동남아 신부들의 결혼이 증가하면서 외국인 집단거주지도 생기고 이른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결혼이나 귀화를 통한 국적변경자, 또한 그들의 자녀들이라는, 이제까지 한국에서 보기 힘든, 외모가 다른 국민들이 대거 등장하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것이다.

소위 글로벌 시대에 더 이상 단일민족을 주장하는 것이 무의미한 지금 우리는 편견 없이 21세기를 살아갈 준비가 돼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간 한국 여성과 외국인 남성에 대한 비자 차별, 혼혈아의 군입대 불허 등 장벽들이 하나씩 제거되긴 했지만 우리 의식전반에 걸친 뿌리깊은 인종차별주의가 얼마나 해소됐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내가 보건대 차별의 해소는 의식 개혁을 주문하는 것만으로 될 일은 아닌 듯하다. 지난해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등 신체조건과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종교, 사상, 범죄전력, 성적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 총 20여개의 영역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법안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일부 종교단체와 보수단체, 일부 기업들의 반대로 일부 조항이 수정 삭제돼 원안의 취지가 훼손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차별금지법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시대를 리드할 수 있는 선진국으로 나갈 수 있느냐는 잣대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 차별 예방과 사회적 약자의 보호 등을 지향할진대 이 정도 법안도 없이 선진국 시늉을 낼 수는 없지 않은가.

미국에는 '피 한방울 정책(One Drop Policy)'이라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오랜 세월 존재했다. 비백인의 피가 한방울만 섞여도 백인으로 인정치 않는 미국의 역사를 들추다가 문득 조선시대 서열의 차별이 떠올랐다. 그들은 피부색이라도 구별했지만 우리는 그만도 아닌 일로 차별했으니 미국의 골수 인종차별주의자가 울고 갈 일이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우리 사회 전반의 뿌리깊은 차별의식을 씻을 수 있도록 던져진 화두가 아닐런지. 혼혈 국회의원도 나오고 귀화한 외국인 장관도 배출되는 모습을 대한민국에서 보고 싶은 것이 나만의 소망일까.

rob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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