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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승가 ‘오늘’을 살아라” 40여년 전 혜안 서경수의 목소리 ‘불교에 바란다’
조계종이 자성과 쇄신을 통해 한국불교를 바로세우겠다는 뜻을 세우고, 정부예산 지원을 통한 살림살이 유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계종 총무원은 ‘민족문화수호위원회’ 결성하고, 종단의 방침이 사찰 구석구석에 전달하고 사찰과 신도들이 민족문화 수호 의지를 결집하고 있다. 특히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26일 신년 담화문에 ‘5대 결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담화문에는 ‘봉암사 결사’ 이후 가장 강력한 뜻이 담긴 ‘결사’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종의 일련의 행위는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이 근본원인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계속된 특정종교 편향 인사 및 정책, 불교폄훼 및 각종 훼불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현실인식에 의한 것이다.
불교는 오늘을 사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불교계는 물론 사회의 시각에는 ‘예산을 안줘 화낸다’는 편협한 인식이 존재한다. 교계에서 조차 일부에서는 부처님오신날 전후면 끝나지 않겠냐?는 목소리도 있다. 또 일부에서는 조계종이 그동안 해온 것이 있는데 오래 가겠냐는 소리도 들린다. 일부 조계종의 중진 스님이나 천태종과 진각종 등 타종단은 조계종과 정부여당의 불편한 관계를 그저 얼마가지 않을 일로 여기는 모습이다. 한 종단 대표는 “얼마가지 않아 타협할 것이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이 같은 문제는 조계종단의 내부 문제일 수도 있다. 종단의 뜻이 완전히 결집되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타종단에 대해 배려하지 않은 조계종의 자업자득일수도 있다. 불교계가 사회의 변화와 걸음걸음에 보조를 맞추지 않은 탓일 수도 있겠다. 고매한 종교적 이상을 내세워 불교는 일반사회와 다르다는 모습만 보였을 수도 있겠다. 또 불교는 국민에게 행복과 위안이 되어야 하는 데 왜 투쟁으로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고 있냐는 목소리도 일견 맞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교는 살아가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자성과 쇄신을 통한 불교의 자주성 확보는 오래된 꿈이다. 최근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였던 혜안 서경수 박사의 저작집이 나왔다. 1986년 입적했으니 24년여만의 일이다. 서경수 교수의 저작집은 대부분 60년대부터 70년대 사이에 쓴 글들이 묶였다. 이 가운데는 현재 조계종단이 참고할 만한 글들도 있다. 3,40여년 전 쓴 글이지만 오늘날 한국불교의 현실문제와 동떨어지지 않았다. 몇몇 글을 통해 ‘민족문화 수호’ 등 조계종단의 현실문제에 대한 원칙과 해법을 살펴보자
한국불교, 과거지향적 성향에서 벗어나라
서경수는 한국불교계가 ‘과거지향적 성향’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서경수는 <불교계에 바란다>는 글을 통해 “동양 역사와 함께 늙어온 불교는 찬란했던 과거를 되돌아보는 회상 속에서 지내는 과거적 존재로 굳어버린 인상을 풍긴다”고 지적한다. 그는 “모든 종교는 강한 보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과거지향적 성향을 띠고 있고, 한국불교는 다른 어느 종교보다 과거지향적 성향을 띠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오늘을 사는 불교교단은 결코 ‘유형문화재’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오늘의 시간에서 호흡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며, 오늘을 살고 있지만 어제의 시간에서 호흡한다면 오늘을 살고 있다고 하나 실은 어제의 연장으로 어제를 따라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서경수는 말했다.
불교는 유형문화재가 아니다
서경수는 불교는 오늘을 살아야 하며 오늘의 시간을 호흡하고 오늘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늘을 사는 인류의 문제와 대결하는 것이 오늘의 종교라는 것이다. 그는 “오늘의 불교가 과거에 찬란했던 유형문화재의 보존과 관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고 단정한다. 과거의 유형무형문화재를 창조할 수 있었던 이념적 동기를 제시한 불교사상의 진수를 오늘의 사회와 인간을 위해 오늘의 문제에 재조명하여 해결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불교라는 것이다.
서경수의 이 같은 말로 본다면 현재의 ‘민족문화 수호 활동’의 원칙은 단순한 불교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과거를 위한 활동이어서는 곤란하다고 하겠다. 민족문화 수호는 결국 불교문화를 일궈낸 불교정수를 오늘에 되살리고 오늘을 사는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한 모색에 나서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문화 수호 활동이 과거지향적이 아닌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정치권력과 밀착되면 부패할 위험있다
서경수는 ‘정치와 불교의 관계’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하는 눈을 가져달라고 교단에 부탁한다. 그는 종교가 너무 정치권력과 밀착되면, 권력의 시기를 받든지 아니면 정치권력과 부패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세속적 권위집단인 정치권과 세속을 초월한 교단권 사이에는 엄격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호구불교에 분제가 있음을 반성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경수는 “한국에 불교교단 즉 승가는 세속적 정치권력집단과 너무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승가의 권위는 세속적, 정치적 권위를 넘어선 지위에 있다”고 지적한다. 또 호국불교에 대해서는 “호구이라 할 때 ‘국’이 지칭하는 대상은 ‘국왕’도 포함되고 ‘국토’나 ‘국민’도 포함될 수 있다. 광범위하게는 ‘국가’도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불교의 호국은 구체적으로 어느 것을 지칭했는지 분명치 않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지적은 현재 조계종 교육원이 추진하는 호국불교연구 사업의 추진배경과 다를 바 없는 얘기인 것이다.
호국불교에 대한 비판과 반성 필요하다
서경수는 특히 “한국불교가 한국의 국왕·국토·국민을 위한다면, 중국불교는 중국국왕과 국토, 국민을 위해서이고, 일본불교가 일본국왕, 국토, 국민을 위한다면 불교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반목과 전쟁을 조장하는 일이 되어 평화를 이상으로 하는 승가의 보편성과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불교는 어느 특정국가나 민족의 안정과 보전을 위한 종교는 아니라는 것이다. 호국불교를 한국정치를 보호하는, 한국의 전쟁을 막는데 힘쓴 불교처럼 여기는 것에 대한 질타이다. 서경수는 호국불교에 대한 불교교단으로부터의 반성이나 비판은 한번쯤 있어야 했다고 강조한다.
서경수는 “승가와 국가 사이에는 엄연히 각자가 굳게 지켜야 하고 남의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본다”면서 “승가와 국가가 서로 뚜렷한 관계를 지켜가면서 공존하고 상호견제 해야 승가와 국가의 발전은 조화를 이루며 순조롭게 될 것”이라 밝힌다.
적극적인 불교의 사회참여 바란다
그가 강조하는, 바라고 싶은 것 한 가지는 ‘적극적인 불교의 사회참여’이다. 그는 “종교는 어디까지나 사회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사회나 인간이 종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서경수는 부처님께서 녹야원에서 초전법륜을 굴린 의의는 “부처님과 중생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진 불교라는 종교가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것임을 지적하고 “부처님이 첫 발언을 시작하자, 중생과의 대화의 길이 열리고 대화가 이루어질 때 불교라는 종교가 탄생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불교교단, 즉 승가는 오늘이란 역사적 시간과, 오늘이란 사회에 존재하는 특수집단이며, 승가라는 집단은 나의 이익, 내 가족의 이익, 내 나라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세계에서 인류전체의 이익을 드높게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늘의 불교는 살아있는 오늘의 사회를 의식하고 그 사회의 현실문제와 대결하여 그 사회와 함께 사는 데서, 불교가 오늘을 산다는 자각과 사명이 확신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늘을 사는 승가가 사는 곳은 한국땅
서경수는 ‘오늘을 사는 승가’가 위치한 곳은 엄연히 한국 땅이라고 지적한다. 이 한국 땅에서 오늘을 승가는 살아야 하는 것이라며 승가는 부처님처럼 ‘길 위’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거리의 한복판에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며 부처님의 진리를 소리 높여 변증하라고 말한다. 그는 또 오늘을 사는 승가는 부처님의 말씀을 우렁차게 합창하는 ‘화합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경수는 “템포가 늦은 복고적 음조가 아니고 오늘에 알맞은 템포로 합창해야 한다”면서 “우렁차 합창을 합창하며 거리로 행진할 때 ‘오늘을 사는 승가’의 ‘오늘’이 석양을 바라보는 ‘오늘’이 아니고 새 아침을 바라보는 ‘오늘’임을 사람들은 알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을 사는 승가(교단)’는 우선 오늘이 ‘어찌’되어 있는가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오늘을 모르고 오늘을 사는 승가는 ‘깨어 있는 승가’라 할 수 없다. ‘오늘을 사는 승가’는 오늘을 바로 보고 ‘어제와 다름’을 알아야 한다. 무거운 어제에 눌려서 오늘을 허덕여서는 안된다. 어제가 무거웠다고 오늘도 내일도 무거워서는 안된다. 무거운 것을 짊어진 이유를 바로 보고 털어버려야 한다. 어제 그랬으니까 오늘도 그렇겠지 해서는 곤란하다. 최근 조계종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이렇다. 그동안 그랬으니 앞으로도 변할 게 있겠냐는 시각이라면 오늘을 사는 불교는 요원할 것이다. 그동안 못했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속단하기 보다 오늘을 살기 위해 힘쓰는 데 힘을 실어주고 동참해야 한다. 대중이 동참하지 않으면 불교는 또 어제를 살 수 밖에 없다. 교단이 어제를 살면 교단 주변에 있는 모든 사부대중 역시 과거에 집착하고 오늘을 살기 어렵게 된다. ‘오늘을 사는 불교’에 살고 있는 사부대중은 운명공동체이다.
민족문화 수호 등, 오늘을 살기 위한 방안이어야
서경수의 말대로라면 ‘민족문화 수호’나 ‘화쟁위원회’ 활동, ‘불교사회연구소’ 설립, 승가교육진흥위원회 활동 등등 모든 것은 오늘의 불교를 살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 계획이어야 겠다. 40여년 전 서경수 교수가 본 한국불교의 문제는 오늘에도 여전해 보인다. 이제 과거에 살던 불교를 끝내야 한다. 노학자가 40여 년 전 말한 ‘오늘을 사는 불교’가 더 이상 요원해서는 안된다. ‘화합중’ 모두가 합창을 해야 한다. 한 목소리로 한 마음을 내 소리쳐야 한다. ‘오늘을 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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