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불교중흥을위한 대토론회 -토론문   2011-02-07 (월)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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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1]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헤쳐가야 하는가 
      
주경스님/서산 부석사 주지, 중앙종회의원


1. 간략한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에 대한 이해

한국의 근현대사는 격동과 위기, 변혁의 과정에서 생존을 위한 도전과 투쟁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이 무너지고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는 이 나라를 근본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신분과 계급제도를 비롯하여 국가의 모든 체계가 일제를 중심으로 개편되었다. 특히 한국역사의 외곡과 일본문화의 이식은 민족의 전통과 정체성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남북이 분단되며 이 국토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과 대립의 대결장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친일파와 친일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미군정에 의해 친일세력의 정치 경제적 세력은 그대로 유지된다. 분단과 친일세력의 잔존은 현재의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전통문화에 대한 외면과 무시 그리고 도덕불감증의 근본 원인이다.

3.15부정선거로 몰락한 이승만 정권은 분단을 야기한 미국과 야합하여 탄생한 정권이다. 이들은 기나긴 항일투쟁을 통해 민족 정통정부의 구성을 염원했던 백범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의 역사와 전통, 독립정신을 등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파괴하고 소멸시켜 버렸다. 이승만 정부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공이념으로 국부를 자처하는 독재적 국가 통치로 국가와 민족의 정통성 확보와 친일청산을 통한 사회통합에 실패했다. 오히려 친일세력이 그 지위를 확보하고 정치적 사회적 세력을 공고히 하는 기회를 주었다. 4.19혁명으로 얻은 이승만정권의 퇴진과 짧은 민주주의에 뒤이은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긴 군사독재와 한국적 경제발전, 그리고 박정희의 저격과 뒤이은 전두환의 군사 쿠데타. 이렇게 한반도의 20세기는 갈등과 투쟁, 위기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시간으로 점철되어왔다.

일제에 협력하던 친일세력들은 일본이 패망하고, 친미로 변신해서 이승만 정부에서 살아남았다. 이후 이러한 세력들은 정치적으로 이 나라와 사회가 뒤집어지고 변화할 때마다 생존과 성공의 기반을 유지해온다. 그리고 한국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그 단적인 예가 한국의 화폐에서 나타난다. 우리의 화폐에는 수 백 년 전 조선시대의 인물들밖에 없다. 세계 어느 나라의 화폐를 살펴봐도 이런 나라는 없다. 대부분의 나라가 국가를 건국하거나 독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근현대사의 인물들을 화폐에 새기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아직 우리의 근대사를 이끌어 온 의사ㆍ열사들의 독립정신과 그 사상을 담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지금의 정부에 들어와서는 국사가 선택과목으로 되어버렸다. 세계의 어느 나라가 자신들의 역사를 선택해서 배우도록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느 나라를 본떠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나라와 민족을 막론하고 가장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과목이 있다면, 바로 국어와 역사와 산수이다. 일본은 계속적으로 독도를 그들의 영토라고 우기고, 우리의 동해는 일본해로 표기되고 있으며,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그들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있다. 이런 형편에 우리의 역사교육을 포기하는 우리 교육당국의 속내를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근현대사를 대략 돌아보면서 현재의 한국이 이렇게 경제적 역량과 국제적 위상을 갖추게 된 것은 거의 기적적인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변혁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다수 우리의 전통문화와 정신을 잃어버리고,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오직 잘 살기 위한 경제적 가치의 추구와 신분상승의 욕구로 점철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유구한 역사와 문화적 자산을 자양분으로 하여 현재의 경제적 발전을 이루고 있으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인식의 수준은 아직 현저히 낮은 단계에 머물고 있다.

대표적으로 불교와 불교문화재에 대한 시각에서 그 단편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와 당국자 또는 일부 전문가 그룹은 불교문화재를 대할 때 종교적 신성함을 인정하지 않고 물질적인 존재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또 불교문화재의 지정비율로 볼 때, 불교계와 불교계 추전인사들이 문화재 정책의 기획과 집행에 당연히 함께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고려하고 있지 않은 현실이다. 특히 종교편향과 차별이 두드러진 현 정부에 와서는 자의적으로 종교적 잣대와 정치적 잣대를 멋대로 들이대며 종교간의 분규상황을 조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 불교계의 토지를 공원으로 묶어 놓은 것이다. 종교자산인 불교계의 산림과 사찰토지를 국립공원 등 각종 공원으로 지정하여 종교 활동을 규제 및 제약하고 재산권을 심대하게 침해하고 있는 형편이다.

2. 근현대 한국불교의 전개와 상황에 대한 간략한 정리

조선 500년간 한국불교의 명운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졌다. 세계사를 둘러보아도 500년 동안이나 현실적으로 정치적 사회적으로 탄압을 받으며 그 존재를 이어온 종교는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말 경허, 만공 선사와 백용성 스님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출현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한국불교는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일제 36년간 한국문화의 침탈과 더불어 불교 왜색화에 의해 한국불교는 대처불교라는 변형이 생겨나게 되었다. 해방이후 한국불교는 대처와 독신비구승과의 분규로 내외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된다. 60년대 초, 조계종의 성립이후 비구대처간의 분규는 종식되었지만 이후 수 십 년간 소송과 재판으로 역량을 소모한다. 현재의 수많은 군소종파의 난립도 비구대처간의 분규로 인한 부산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1980년 한국불교는 쿠데타 정권에 의해 유례없는 법난을 당하여 최악의 상태로 내몰린다. 그리고 94년과 98년의 두 차례의 조계종 분규는 한국불교의 현대사에 가장 아픈 기록으로 남았다. 해방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문물이 밀려들어오고, 그들의 종교와 사상이 이 사회를 잠식해 갈 때, 불교계는 내부의 분규와 정치적 탄압의 그늘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중에도 한국불교는 청정한 수행교단을 건립하기 위한 중단 없는 노력을 기울여 왔고, 사찰들은 꾸준히 불사를 이루어 왔다. 사실 개신교와 가톨릭이 서구 강대국의 지원과 이에 따른 정부의 호의 아래에서 순조롭게 자리 잡고 발전해 왔다면, 불교는 내부의 분규와 외부의 압박을 견뎌내며 치열하게 자활해온 것이다.

현재 한국불교는 불교 정통의 가르침과 유교적 가풍이 일부 혼재 하고 있으며, 종단과 사찰 운영에도 불교 전통의 방식과 현대 민주주의적 요소가 혼합되어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수많은 내외의 장애와 문제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자기 정화와 종단확립에 노력하고 있으며, 사회참여와 중생구제에 더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불교는 점점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3. 현재 한국불교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헤쳐가야 하는가?

1) 사상과 철학의 문제

현재 한국불교는 바다와 같아 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다는 추상적인 사고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수행교단과 개인의 삶의 원칙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까닭에 불교 본연의 엄격한 수행가풍과 청빈한 삶의 기초를 흐리고 있다.
특히 통불교라는 미명아래 유불선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상과 수행방법의 채용이 자유로운 상황이다. 새로운 종파를 생성하는 창종도 일부 개인이나 집단이 임의적으로 할 수 있다. 한국불교의 장자 종단인 조계종도 독신 비구로서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과 종법에 정한 미등록 사설사암의 소유 및 몇 가지 법적 제한을 제외하면 무한히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된다. ‘불조의 혜명을 잇고 자각각타(自覺覺他)’ 한다는 대 전제가 있을 뿐, 현대사회에서 출가승단의 구성원으로 가져야 할 구체적인 원칙과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 승가의 가장 근본적인 수행생활의 원칙인 탁발과 무소유 정신도 거의 포기가 된 형편이다. 탁발이 폐지됨으로 중생들과의 만남은 단절되고 폐쇄그룹으로 살아가게 되고, 소유에 대한 적절한 원칙과 규정이 없는 까닭에 사설사암을 비롯한 법인, 부동산 및 동산 등의 재산상 소유가 거의 무한대로 허용되어 있다.
총무원장과 본사주지를 비롯한 소임자 선출에 있어서 세속적인 선거제도의 도입과 확산은 세속적인 정치화와 혼탁한 선거풍토의 유입이라는 심각한 병폐를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선거의 권한을 가진 사설사암은 더욱 늘어가며 이들의 정치적 권한은 강화되어가는 것이 현실이며, 선거에 관련된 다툼과 소송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 한국불교가 서있고 가야할 뚜렷한 사상과 철학을 정립하고 현실적인 수행교단의 존재 원칙과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가. 현실적인 승려의 위상과 위의가 정립되어야 한다.

승려는 원칙적으로 승가 구성원의 근본 입장인 수행자로서 그 존재가 형성된다. 그러나 한국의 승려는 수행자 이면서 사찰의 관리와 포교, 전법교화 해야 하는 포교사로서의 현실적인 사명도 함께 질 수 밖에 없다. 수행자로서만 존재할 수도 없고, 성직자 역할만 할 수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교단은 구체적인 승려의 위상과 역할을 규정하고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으로서나 교단 구성원으로서 승려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상과 역할 규정이 필요하다. 두 역할을 모두 감당해야하는 원력 승려도 힘이 겨워 보이고, 교묘한 처신으로 의무와 역할을 피하며 자신의 편리와 이양만 추구하는 박쥐승도 옳은 모습이 아니다.
출가 승려 간에도 그 위계와 질서가 뚜렷하지 않다. 교육제도의 혼재와 소임과 승납에 따른 위계가 엄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같은 산중, 같은 교단에 소속된 승려들은 분명한 위계와 질서가 존재해야 한다. 주지 등 중요소임을 산다고 위계를 어겨서는 안되고, 개인의 삶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는 사설사암을 소유하거나 경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별격의 존재처럼 살아가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된다.
수행할 때와 소임을 살 때 그 부여되고 담당하는 위상과 품행의 근본원칙과 기준이 보다 분명히 확립되어야 한다.
출가자와 재가불자 사이에도 적절한 위계와 질서가 필요하다. 출가자의 지나친 우월감과 언행은 재가불자들로 하여금 승가에 대한 불신과 환멸을 낳게 할 수 있으며, 사찰과 법회에서의 독선적인 행동과 태도는 이미 뜻있는 재가불자들의 지탄을 받아오고 있다. 또한 출재가 구분 없이 호형호제 하며 출가자의 위의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것도 문제다. 상호 존중하고 협력하는 출가와 재가의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3천 가지 위의(威儀)와 8만 가지 세행(細行)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승려의 삶의 원칙을 제시하는 크고 굵은 가닥이 분명해야 한다.

나. 수행과 포교 및 교화활동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선원수행자가 과연 그 존재만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사무치게 돌아봐야 한다. 적어도 해제 철이나 선원의 좌복에서 일어나 세상으로 나왔을 때는 최소한이라도 참선지도, 법회 등 포교와 교화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현재 선원의 수좌는 종단구성원으로 너무 자유롭고, 포교 교화 활동 및 종단 사업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게 전반적인 여론이다. 또한 종단 내에서 선원 대중이 특별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도 종단화합에 장애 요인이다.
정진하는 수좌와 소임을 사는 사판의 구별과 차이가 종단에 너무 엄연하다. 서로 간에 차별로 느낄 정도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을 때도 있다. 정진대중과 소임자라는 이판사판의 이분법적 시각을 버려야 한다. 그저 앉으면 수좌고 소임에 들면 소임자이다.
종단의 중요 소임을 담당했던 중진급 이상의 승려들이 선원의 수행자로 돌아가 정진 하는 모습이 수행종단으로서의 위상을 세우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충분한 경험과 능력을 두루 갖춘 승려가 포교와 교화 등 중생제도와 종단발전에 기여해야 함에도 단지 평범한 수행자로 돌아가 어떤 기능과 역할도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진정한 수행의 목적과 중진 승려의 종단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한다. 두드러진 소임과 책임을 가진 위치를 갖지 않더라도 그 역할과 기여에 대한 책임감이 요구 된다.
주지 등 권한과 책임이 있는 소임을 주지 않으면 나 몰라라 하는 안이한 인식과 풍토가 문제이다. 수행자로서의 헌신과 정진력이 중생들과의 만남의 장에서도 발현되어야 한다.

소승적 자기 학습과 수행에만 몰입하는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본교육과 선원정진, 유학 등 자기수행과 공부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승려가 적지 않다. 뒤지지 않는 자질과 품성을 지녔지만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교단도 훌륭한 인재의 양성과 활용이 분명 필요하다. 현재 우리 종단의 수학형태는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개인의 능력평가와 차후 역할부여에 대한 고려 없이 다만 학습과 공부에 매진하는 것은 우려스럽기도 하다. 불조와 대중에 대한 역할 감당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2) 종단과 사찰 운영의 문제

현재 한국불교에서 가장 심각하게 당면한 문제가 정부의 종교차별과 편향, 수행환경의 제약과 4대강을 중심으로 한 환경파괴의 문제이다. 정치학자들은 지금의 MB정부를 우파기독교정부라고 지칭한다. 이들은 보수실용주의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그 근본은 뉴라이트 네트워크를 조직적 사상적 기초로 하여 성립되었다. 이들은 성시화 운동과 역사교육 폐지, 부자감세 등의 정책을 채택하고 뉴라이트 계열의 인물들을 정권의 실세로 등장시켜 전통종교와 전통문화를 폄하 압박하는 정치를 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흐름과 전통종교와 전통문화에 대한 위기상황에도 우리 불교의 대응과 대책은 느슨하기만 하다. 그 근본적인 문제가 종단과 사찰운영의 틀이 현대사회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대응해가기에는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긴박한 문제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지만 근원적인 종단운영과 사찰운영의 철학과 제도개선에서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건강한 교단의 운영과 건전한 사찰의 역할 부여와 활동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가. 주지 및 소임자의 잦은 교체로 사찰 운영의 안정적인 틀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주지의 임기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현 주지 임기제도의 장단점에 대해 면밀한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 주지의 잦은 교체로 인한 공찰의 공동화현상과 전교자의 성과와 실적을 무시 또는 배제, 폐기하고 원점에서의 새롭게 시작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주지의 임기를 늘이거나 안정적인 연임 제도를 마련하여 사찰운영의 내실화를 기해야 한다.
또한 일정규모 이상의 사찰의 경우 주지 이외의 일반 대중은 주지의 교체여부와 관계없이 계속적으로 그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받침 되어야 한다. 본, 말사 모두 전임자와 후임자간의 연속성과 책임성을 담보 할 수 있어야 한다.
전횡적 주지제도의 행태도 문제다. 주지면 뭐든지 해도 되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주지만능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 대중이 선출한 소임자로서의 그 권한과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하고, 대중에 의해서 운영되는 사찰이 되도록 해야 한다. 주지의 신분보장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일으킨 주지에 대한 평가와 징계 등도 현실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나. 종단 및 본사 소임자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최소한의 소임에 맞는 소양과 경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임에 따른 적절한 자격연수와 교육이 필수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최근 15대 종회의원 선거와 관련한 선거관리위원회 및 법규위원회의 판단과 결정은 전문적인 식견과 경험을 갖추지 못한 소임자와 소임자 그룹이 범할 수 있는 오류와 혼란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 종단의 소임 대부분은 법납과 법계규정을 제외하고 별다른 자격과 경력이 없어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특별한 책임감과 의무감 없이 소임을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보인다. 도덕성과 책임감은 소임자가 근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이다.
인연관계에 따른 주먹구구식의 인사행태도 큰 문제이다. 작은 소임에서 큰 소임으로,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의 자연스러운 소임의 진행과 전개가 필요하다. 소임의 변화에 따른 교육과 연수과정도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현 정부의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정실인사가 이 나라와 사회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하는지가 반면교사이다. 도덕불감증이 만연하고 종교간 대립과 투쟁을 불러오는 지금의 정부는 무원칙한 인사와 우리 종단의 인사형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은 그냥 흘려 넘길 것이 아니다.

다. 종단 내에 재가불자들의 역할과 기능이 없다.

1) 재가불자는 승가에 대한 외호와 지원을 담당하는 불법의 수호자들이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불교 특히 조계종은 대부분의 사찰들이 관람료와 불전, 그리고 정부의 각종 보조금에 재정적인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재가불자의 존재와 역할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찰이 순수한 불자들의 시주와 후원금보다는 각종 불공과 재, 기도 등 승려의 축원과 노력에 대한 반대급부적이고 대가성의 수익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종교적 순수성과 자발적 보시와 봉사는 종교의 근본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현재의 한국불교는 근본이 확립되지 못한 기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재가불자들이 기존의 종단과 사찰의 기득권에 개입하고 시비를 가리기 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재가불자의 전형과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승가의존적이기 보다 독립성 확보가 우선적 과제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종단 내에서의 위상과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2) 포교사단의 건전한 육성과 활용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의 포교사단이 취하고 있는 비승비속, 반승반속적 사고와 위치에서 방황하는 포교사단의 위상을 분명하게 정립하고, 적절한 역할과 기능을 부여하여 불법홍포와 교단발전의 자양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우리 종단은 출가 승려의 절대적 부족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천여 명에 이르는 교육되고 조직된 포교사들의 역할과 기능은 현재 한국불교의 고질적인 출가승 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교사 개인과 포교사단은 종단과 개별사찰 또는 스님들과의 협력 연대활동 보다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활동을 선호하고 있으며 이러한 체계는 지난 10여 년 동안 개선되지 못하고 고착화 되고 있다. 포교사와 포교사단의 본사단위 또는 지역단위의 사찰 및 승가조직과의 유기적 조직적 결합을 통한 활동기반 마련을 위한 심도 있는 논의와 실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라. 최소한의 포교와 교화의 안정적인 틀을 갖추어야 한다.

종교는 최소한 그 가족 내에서 공유되고 일치되는 성질의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불교는 그 최소한의 조건인 가족포교에서부터 실패하고 있다. 자녀와 배우자에게 종교적 평화와 이익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최고의 종교이며 최상의 가르침임을 확신하고 출가한 승려들조차도 자신의 가족에게 불교를 포교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도 있다. 불자들은 최소한 그 가족들에게는 종교적 동일성과 신행공동의 틀을 갖춰야 한다. 이미 불교의 인연을 가지고 있는 불자들과 가족들의 포교와 교화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부족하다면 누구를 먼저 포교하고 교화할 것인가. 가까운 곳은 친하고 먼 곳을 공격한다는 근교원공(近交遠攻)의 전략이 불교포교의 근본 지침이 되어야 한다.
또한 신도들의 시주와 기부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재원과 재정적 기초를 마련해야. 현대사회에서는 안정적 재정의 기초 없이는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다. 기존의 관람료와 불전금, 정부보조금 등의 비종교적 재원의 비중을 줄이고, 불교의 정신과 보살행을 위한 명분과 사업을 정립하여 신도들로부터의 시주금과 기존 자원의 활용을 통한 재원마련, 각종 기금 그리고 수익사업 등을 통한 재원마련과 투명한 운용이 필요하다


[토론2]한국불교의 근본적 쇄신을 위한 성찰
성문스님/제9교구본사 팔공산 동화사 주지

1. 근본적 쇄신을 위한 성찰

현재 한국불교의 상황은 외형적으로 과거에 비해 각 분야에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종교적 정체성 강화, 자정능력의 회복 및 승려 자질의 향상, 신도교육의 강화, 종교지도자의 교육 및 관리시스템 선진화, 신도 간의 소통 및 결속력 확보 등 여러 분야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 지난 1985년부터 2005년까지 불교인구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도표와 같이 수도권에서는 불교인구 감소가 두드러져 소수종교로 전락할 지경에 이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2005년도 조사결과에서 불교인구는 3.9%정도 증가했지만 전체 인구가 전에 비해 5.5% 증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1.7% 감소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2005년도 조사자료를 보면 서울과 부산에서 불교인이 두드러지게 감소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인구 2,250만여 명 중 불교인구는 373만여 명으로, 개신교 501만여 명, 천주교 301만여 명에 비하면 상당한 열세로, 불교가 자칫 소수종교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1) 승가교육진흥과 인재불사의 시급성에 대하여
현재 우리 종단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출가자 감소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추세로 나아가다는 사찰에 문화재만 남고 수행과 교화 등 불교 자체의 생명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출가수행자는 한국불교의 교단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자 교단의 미래를 책임질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도 종단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우리 종단에는 전국 2천5백여개소의 사찰에 모두 1만3천8백여명(사미, 사미니 포함)의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 현상과 1자녀 가구 증가로 인한 출가자의 고령화가 날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40세 이상 출가자 수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0%선을 처음 넘은 이후 이듬해 23%를 기록한 뒤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왔다. 반면 전체 출가자의 절반 이상을 넘던 20대 출가자는 외환위기 이후 계속 감소해 20%선까지 낮아졌다.

더욱이 강원을 비롯한 20여개 승가교육기관의 신입 학인 수는 2005년 461명에서 2010년도 344명으로 117명이나 감소하였으며, 이러한 출가자 감소로 인해 사찰 소임자를 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각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춘 스님들도 줄어들고 있어 교세 약화의 위험성마저도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미 출가자 부족 상황에 직면한 싱가폴이나 말레이시아에서는 외국스님들을 초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대만 사찰들은 불학원에 출재가가 함께 공부토록 함으로써 출가자의 수를 확보하고 있고, 스리랑카에서는 출가를 권장하는 대규모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는 등의 사례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종단은 지난 2010년부터 이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승가교육 진흥불사를 추진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승가교육이 종단의 미래를 담보하는 대작불사라는 대전제 아래, ‘사회와 역사에 부응하는 승가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승가교육 진흥불사는 ‘소통하는 수행자 실천하는 수행자 양성’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구체적인 현실공간에서 중생과 함께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치는 스님,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올곧게 살아가되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스님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승가교육 진흥과 함께 시급히 추진돼야 할 사업이 바로 출재가를 막론한 종단인재불사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대학생불교연합회를 비롯해 전국 사찰의 청년회와 중고등학생회, 어린이 법회 등 계층포교 활동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논의한 출가자 부족의 문제 역시 이러한 인재불사가 토양이 되어 우수한 출가자들이 배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시점에 와 있기도 하다.
포교와 역경, 도제양성이라는 종단의 3대 지표는 출가승단에만 국한된 명제가 아니라 출재가를 막론한 불자인재의 양성과 적재적소 활용을 말하며, 사부대중이 합심해 이룩해야 하는 종단 지상과제이다.

2) 제도개혁의 한계와 율장정신
해방 이후 지난한 정화불사를 통해 1961년 출범한 조계종은 이후 1983년 비상종단 출범, 1986년 해인사 승려대회, 1994년 개혁종단의 출범이라는 3차례 커다란 변혁의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계기들은 당시의 시점에서 불교 내외의 혁신에 대한 열망을 수용해 이루어졌으며, 불교발전을 도모할 긍정적 성과들을 거두었다는 측면에서 불교사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1994년 개혁종단의 출범 이후 10여 년간 지속된 제도개혁 작업은 승가 본연의 수행가풍과 위계질서, 산중공의제도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도입된 세속적 선거제도로 인해 종단 전체가 급격히 세속화되는 폐해가 발생하게 되었다. 특히 선거과정에서 승가 내의 위계문란과 갈등이 날로 증폭되어질 뿐만 아니라, 금권 타락선거 풍토의 만연으로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종단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정치적 승자 논리에 따라 일방적이고 무자비한 징계를 양산함으로써, 종단갈등의 불씨를 키워왔을 뿐 아니라 화합승가 구현의 최대 장애요인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종단 각종 선거제도의 개선을 주내용으로 하는 제도개혁특위가 여러 차례 가동되기도 했지만, 문중과 파벌로 대변되는 새로운 기득권 세력들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처럼 승가의 고유한 가풍과 수행전통을 무시한 채 세속의 선거제도를 그대로 이식한 현행 종단의 각종 선출방식은 조속히 전통의 산중공의제도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으며, 현안해결과 정치적 징계의 회복에 있어서도 세속의 법리보다는 율장과 승가전통 수행규범에 의거해 승단위계 유지와 승단화합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진정한 화합종단이 구현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종단에 있어 승가 전통공의에 근거한 종단 지도자의 선출, 분쟁의 해결과 갈등의 해소, 한 사람의 수행자도 소중히 생각하는 공평무사한 징계 등에 관해서는 율장에 근거하고 부처님 근본으로 돌아가는 쇄신이 시급한 실정이며, 그 지향점은 잃어버린 교단의 정체성 확보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국민들에게 희망 주는 불교쇄신
한국불교는 삼국시대 중국에서 전래 후 고려 말까지 1천여 년간 주류사회의 중심이념으로 자리 잡아 왕조의 통치이념 확립과 삼국통일에 커다란 역할을 다해 왔다. 비록 고려 말에 들어와 부패와 방만한 사원경영으로 물의를 빚었지만, 그 또한 조선을 건국한 유학자들이 의도적으로 과장, 왜곡, 폄하한 측면도 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5백여 년 조선의 억불숭유 시대에도 민초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면면한 법맥과 법등을 유지해 왔으며, 따라서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국민들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정신적 의지처가 될 수 있는 자기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인류의 찬란한 여명을 가져온 고대문명들도 일순간에 사라진 전례들이 숱하게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한국불교의 가장 큰 문제는 승가공동체 의식이 붕괴되고 세속적인 개인주의가 팽배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제도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세속의 정치제도를 맹목적으로 이식해 종단의 세속화를 부추긴 폐해는 시급히 회복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처럼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전반에 관한 불교적 접근과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단순한 사회운동 논리에 매몰되었던 과거 불교 혁신운동의 방식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또한 불교적 관점에서 첨단 정보화 사회와 기계문명 속에서 날로 소외되어가는 인간존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본질적 고민이 필요하며, 불교적인 가치와 해결방법을 통해 민족통일과 환경, 각종 사회갈등 요인의 해법과 미래사회의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지난 1994년 개혁종단 출범 이후 불교의 사회적 역할 증대라는 지표 아래 △포교 활성화 및 사회복지사업 확대 △재가불자의 종단 참여 확대 △인권 환경 등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불교적 대안 제시 등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실제 1995년 118개소에 머물던 불교계 사회복지시설이 2003년에는 469개소로 4배 가까이 증가하는 등 양적으로는 급성장을 이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당초 취지와 달리 종단내 권력 분산 및 민주화에 치중한 제도개혁은 교단의 근본적인 의식개혁 사상개혁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하고 말았다.
따라서 향후에는 일반 사회운동권 논리와 방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족통일과 인류평화 실현을 위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불교적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4) 신행과 전법포교의 일대 전기
불교중흥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는 역대 불교사의 위기와 전환기마다 구현됐던 결사(結社)와 혁신의 사례들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검토를 통해 교단의 근본적 개혁안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불교개혁에 있어 세속의 정치제도와 사회운동 이념은 원용의 대상이지, 그 자체가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94년 종단개혁을 통해 포교원이 독립된 별원으로 승격되자 분야별 포교영역이 확대되고, 기복불교 중심의 신행형태가 수행중심으로 변화하는 등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특히 공무원과 교사, 직장인 등 직능별 불자회의 창립을 통해 사찰 중심의 신행형태가 직장, 가정법회로 확산되었으며, 포교 관계법의 개정과 신도법 제정 등의 성과도 있었다.

포교원은 ‘포교 10개년 청사진’을 마련했으며, 신도등록제도를 통해 신도들의 수계와 재적사찰 등록을 유도하는 한편, 중앙신도회를 결성하고, 불교세가 약한 지역에 전법도량을 설치하기도 했다. 또 포교사단과 국제포교사회를 활성화 했으며, 각급 불교학생회를 재정비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불교발전을 이끈 인재배출의 산실이었던 대학생불교연합회와 각급 청년회, 학생회 조직들은 오히려 급속히 위축되고 있으며, 포교역량도 지방별, 사찰별로 커다란 편차를 보이고 있어 한국불교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더욱이 교구본사의 일선 사찰 포교활동 지원 역량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 불교대중화를 견인해 온 도심포교당 운동의 쇠퇴 또한 심각한 현상 중의 하나이다.
재가운동의 확산과 재가단체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종단 운영에 대한 재가자의 소외는 조계종의 오랜 숙제 중 하나이다. 개혁종단이 중점을 두어 추진해 온 사찰운영위원회를 통한 신도들의 사찰운영 참여도 일부 대형 사찰을 제외하고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종단의 각종 기구에 재가자들의 참여도 역시 미미한 수준이다.

따라서 신행과 전법포교의 일대 전기를 마련하는 신행혁신운동이 확산될 수 있도록 종단 차원의 지원확대 방안이 마련돼야 하며, 재가신도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종단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 또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5) 정교분리와 자주적 대정부관계
종단이 정부에 요청한 템플스테이 지원예산 삭감을 계기로 촉발된 민족전통문화 수호운동의 열기가 뜨겁다. 더욱이 현 정부 들어 개신교 장로인 대통령의 개인적 신앙과 연관된 종교편향 시비는 서울과 대구의 범불교도대회 개최라는 홍역을 치렀지만, 근본적 개선의 길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여기에 더해 대구와 울산을 비롯한 일부 개신교 단체들의 터무니없는 불교계 전통문화보존예산 시비는 날이 갈수록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불교의 가장 큰 숙제 중의 하나가 정부의존에서 벗어나 재정 자립과 건전성 실현을 통한 자생적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다. 1970년대 이후 한국불교는 기독교와의 교세경쟁에 휘말려 대형불사와 대형법회를 통해 건물만 늘리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또한 사찰재정에 있어서도 신도들의 보시에만 의존하다 보니 공룡화된 가람의 유지보수 비용을 조달하기에도 허덕이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해방 이후 1950년대 정화불사 과정을 통해 형성돼 온 한국불교의 정부의존 관행은 이후 불교재산관리법과 전통사찰관리법으로 이어지는 불교규제 법령의 틀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10ㆍ27법난으로 불교계는 씻을 수 없는 불명예와 상처를 입은 바 있고, 종단 위기나 분규 때마다 정부의 개입에 의해 해결되는 오점을 남긴다.

그 사이 개신교계는 세 차례 장로대통령 집권을 기회로 삼아 정관계에 걸쳐 폭넓은 종교편향 행태를 일삼았고, ‘성시화 운동’으로 대변되는 정교유착 고리로까지 발전했다. 반면 정부의 지리정보 시스템에서 전국의 사찰들이 사라지는 전대미문의 종교편향 사태를 비롯해,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정부의 정당한 전통문화보존예산 지원에 대해 개신교계가 부당한 시비를 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에 쟁점으로 부각된 템플스테이만 해도 2010년 말까지 전국 109개 템플스테이 사찰을 찾은 참가자는 내국인 14만2035명, 외국인 1만9273명으로 모두 16만1308명이었으며, 2009년도 참가자에 비해 15% 이상 증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의 관광 프로그램 중 ‘한국을 소개하는 가장 우수한 프로그램’으로 선정된 바 있다. 하지만 개신교계는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전통문화의 선양’이라는 템플스테이의 본래 취지를 ‘정부의 불교계 선교지원’이라고 왜곡 비난하고 있으며, 자신들도 전국 기도원에 3천억원의 예산지원을 받아 소위 ‘처치(church)스테이’를 추진하겠다는 ‘생떼’를 쓰고 있다.

국가의 국보 및 보물급 문화재의 8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불교계가 민족전통문화 유산을 계승발전 시키는 국가의 의무를 대행하기 위해 정당하게 지원받는 예산에 대해서 정부와 국회, 국민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하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부 예산에 의지한 대형불사를 지양하고, 자생적 불사기반을 구축해 나아가야 한다. 또한 아직까지도 대다수 사찰에서 선언적 차원에 머물고 있는 ‘사찰운영위원회의 실질적 활성화’를 통해 사찰재정 공개와 신도 운영참여를 이룩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사부대중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 불교재정 자립의 첩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1983년 비상종단운영회의 당시 핵심 개혁안의 하나로 추진된 ‘신도 교무금’ 부과방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이 대부분의 사찰이 신도들의 기도비나 불사 시주금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지속가능하고 예측가능한 재정운용에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종단 발전과 사찰운영을 위해 신도들이 수입의 일정 부분을 정기적으로 보시하는 ‘신도 교무금’ 제도의 도입이 진지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현행 ‘신도 교무금제도’는 최초 신도등록시 1만원의 교무금을 납부토록 하고, 매년 1만원의 신도증 재발급 수수료를 부담토록 하고 있으나, 사실상 최초 등록시 1만원의 가입비 이외에는 재등록율이 낮아 지속적인 교무금 납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사회 전반적으로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되는 추세 속에서, 기도비나 불사비도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상황을 고려해, 신도 교무금 납부에 은행예금 자동이체제도(CMS)를 활용하는 방안이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실제로 모 단체의 경우 ‘삼보수호비’ 등의 명목으로 수만명의 신도들이 은행자동이체를 통해 매달 일정 금액을 납부하고 있는 사례를 종단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신도 교무금’의 수입 대비 부과 비율은 경전과 율장정신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종단적으로 정해야 할 것으로 보이며, 수입의 10분의 1을 부담하는 개신교의 ‘십일조’ 수준은 아니더라도, 수입의 30분의 1 정도를 내는 가톨릭 교무금 납부 사례 등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분명히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전제조건은 ‘신도 교무금 납부제도’의 도입 등 신도들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만큼 사찰운영위원회 등의 활성화를 통해 사찰과 종단 운영에 신도참여를 보장하고, 사찰재정 운영의 투명화와 건전화를 통해 신도들과 국민들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6) 다종교 사회와 민족전통종교로서의 역할
대다수 불자들은 이번 정부 들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종교편향 시비와 장로 대통령의 위세를 등에 업은 일부 개신교계의 부당한 불교계 공격을 지켜보면서 매우 불안한 심경을 감출 수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다종교 사회인 우리 한국사회에서의 종교갈등 양상이 심상치 않다는 걱정 때문이다.
개신교계의 가장 심각한 태도변화는 이전의 단순한 ‘교세(敎勢)경쟁’의 차원이 아니라,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민족전통 종교를 ‘우상숭배와 타파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절을 불살라 버려야 한다”면서 ‘종교전쟁’도 불사할 태세로 나오니, ‘민족상잔 6.25’의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우리 민족이 종교 때문에 서로에게 칼을 겨눌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1990년대 이데올로기 경쟁체제의 붕괴 이후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종교분쟁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국가들이 종교문제로 심각한 내전을 겪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겨우 2백여 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 세력은 “기독교 전래 이전의 역사와 민족전통문화는 모두 갖다버려야 할 구악(舊惡)”이라는 편협적이고 호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개신교계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의해 대구 팔공산에 만들기로 했던 역사문화공원이 백지화되고, ‘KTX울산역(통도사)’ 표기에 통도사 부기가 제외되는 등 종교편향을 통해 상대적으로 불교계를 탄압한 사안은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난 2천여 년간 일어난 세계전쟁의 70% 이상이 종교전쟁이며, 불교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전쟁은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새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서 우리 종단과 불자들은 민족전통종교의 자부심을 갖고 지나친 피해의식과 경쟁의식 보다는, 한 차원 높은 입장에서 타종교를 포용하면서 화해와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대승적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2. 환지본처를 통한 불교중흥

금강경에 보면 ‘환지본처(還至本處)’라는 말이 있다. 본래의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 종단과 한국불교가 지향해야 할 불교중흥의 지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본래의 부처님법에 근거한 개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불교는 해방 이후 왜색불교 잔재 청산을 위한 정화불사, 불교의 사회적 역할 증대를 위한 민주화운동 참여, 종단의 민주화를 위한 개혁종단 출범 등 다양한 형태의 혁신불사를 경험해 왔다. 그러한 자기혁신의 노력을 통해 한국불교의 사회적 위상과 교세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했고, 교단운영과 신행체계 역시 상당한 현대화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정치권력에 의지한 종단정화와 사회민주화 운동이념 및 정치제도의 맹목적인 도입은 종단의 세속화를 부추겼고, 승가 전통수행가풍의 붕괴와 갈등심화라는 역작용을 낳고 있다. 자연히 수행공동체의 위계질서와 화합은 무너지고 말았고, 세속의 명리를 추구하는 개인주의와 문중 파벌의 이익만을 지키려는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당시 가장 유명한 공화국인 밧지연맹 지도자들에게 한 나라가 번영할 수 있는 덕목으로 칠불퇴법(七不退法)을 설하시고 계시다. 칠불퇴법을 살펴보면 1. 서로 모여 나라 일을 잘 상의할 것, 2. 서로 협력하면서 해야 할 의무를 잘 지킬 것, 3. 훌륭한 전통과 규율을 잘 지킬 것, 4. 노인들을 잘 봉양할 것, 5. 부녀자를 잘 보호할 것, 6. 조상을 잘 공경할 것, 7. 성자와 공부하는 자들을 잘 봉양할 것 등으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칠불퇴법의 조항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민주적인 나라 운영의 기본이며, 오늘날의 정치감각으로 견주어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것들이다. 부처님께서는 또한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 당시 나라간의 분쟁 문제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모습을 보이셨다.

이러한 부처님의 현실적인 가르침은 이후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법(正法)으로 전세계를 다스린다’고 하는 이상적 제왕상인 ‘전륜성왕(轉輪聖王)’ 개념으로 발전하였고, 인도 아쇼카왕의 통일왕국 건설과 한국 신라의 삼국통일 이념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니, 당시로서는 최고의 국가 통치이념이자 사회운동 이념으로서 작용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전에서는 또한 이 칠불퇴법을 승가운영에 적용시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1. 비구들이 자주 회의를 열고 회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한 비구들에게는 틀림없이 번영이 기대되고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2. 비구들이 함께 집합하고 함께 일을 시작하고 함께 승가의 제반 행사를 치르는 한 비구들에게는 틀림없이 번영이 기대되고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3. 비구들이 이전에 정해진 적이 없는 것을 정하지 않고 이미 정해진 것을 깨뜨리지 않으며 모든 학처(學處=戒本)에 따라 행동하는 한 비구들에게는 틀림없이 번영이 기대되고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4. 비구들이 출가한 지 오래되어 경험이 풍부한 장로비구들, 승가의 어른들, 승가를 이끄는 사람들을 모두 존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구들에게는 틀림없이 번영이 기대되고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5. 비구들이 이미 생기(生起)해 있는 재생(再生)을 초래하는 갈애(渴愛)에 지배되지 않는 한 비구들에게는 틀림없이 번영이 기대되고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6. 비구들이 숲속의 좌와소(坐臥所, 수행처)에 있기를 원하는 한 비구들에게는 틀림없이 번영이 기대되고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7. 비구들이 각자 자신의 마음을 단련하고 또 착한 수행자들을 거기에 오게 하고 또 거기에 오고 있는 수행자들을 편안하게 머물러 있게 하는 한, 비구들에게는 틀림없이 번영이 기대되고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승단을 운영함에 있어 비구들이 자주 회의를 열고 회의에는 많은 비구들이 모이는 것, 비구들이 공동으로 승가의 제반 행사를 치르는 것, 정해진 학처(學處)에 따라 행동하는 것, 원로를 존중하고 봉양하는 것 등은 오늘날의 종단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사항들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불교는 외형적으로 이룩한 성장과는 달리 내면적으로는 종파난립의 문제, 출가와 재가의 문제, 사찰의 경영과 법회운영의 문제, 승려 자질의 문제 등이 심각한 고민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무엇보다 자정능력의 회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교계의 내부적인 분란으로 인한 국민들의 실망과 대중들의 외면 또한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이다.
이러한 때일수록 2천6백여 년간 교단을 유지하게 해준 토대인 율장과 청규에 근거한 청정한 수행가풍의 회복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환지본처를 통한 불교중흥’이라고 할 수 있다.


[토론3] 종교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쇄신의 전제
곽병찬/한겨레신문 편집인

1. 한국 불교의 몰정치적 정치성

지금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구제역 및 조류인플루엔자 확산과 살아있는 생명의 생매장 사태다. 이미 소 돼지 253만여 마리, 닭오리 400여만 마리가 산 채로 죽임을 당했다. 일찍이 이처럼 끔찍한 일을 없었다. 미물이라도 나와 같은 생명이라는 가르침을 받은 불제자임 에랴.
부처님 전생담에 황금사슴 이야기가 나온다. 황금사슴으로 태어난 부처님은 제 한 목숨 선뜻 바쳐, 왕의 학살로부터 새끼를 밴 어미 사슴을 살리고, 동산의 사슴들 생명을 살렸다. 나아가 물속에서 헤엄치는 생명, 날개로 하늘을 나는 생명, 네 발로 다니는 생명 모두를 해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다른 생명의 죽임 앞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던진 희생과 헌신의 결단의 결과다.

불제자들이 작금의 생명 대학살 앞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 특히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총무원이 말이다. 월정사 등 일부 사찰에서 죽임을 당한 생명의 넋을 위로하는 천도재를 봉행했다. 일부 단체들이 다른 단체들과 토론회도 열고, 살처분 금지를 촉구하는 행사도 가졌다. 그러나 대부분 흔적도 없이 잊혀졌다. 종단이 나서도 움직이기 힘든 이 정부를 몇몇 단체들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천도재만 해도 그렇다. 멀쩡한 소 돼지들이 곁에서 생매장되는데, 이미 매장된 가축들의 넋을 위로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생매장만큼 불도에 어긋나는 일은 없다. 멀쩡한 생명을 그것도 단지 예방 차원에서 죽여버렸으니, 불자로서는 용납할 수 없다. 게다가 그건 구제역 청정국 지위 획득과 관련된 것일 뿐이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종단이 한 일은 사실상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지였을까 아니면 게으름이었을까. 아니면 정면 대응이 이 정권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는 정치적 행위로 여겼던 것일까. 제가 보기엔 이 3가지가 모두 얽혀 있다. 정부와 맞서는 게 긁어 부스럼 같고, 그렇다고 과학적 불교적 논리가 충분한 것도 아니고, 굳이 나서려니 귀찮았을지 모를 일이다. 이럴 때 잘 써먹는 게 정교분리다.

그러나 말로만 분리이지 내용은 정교일체와 다름없다. 종교란 으뜸 되는 가르침을 뜻한다. 신이나 스승의 가르침을 넘어 인간이 깨닫고 지켜야 할 최고의 지혜이자 계율이다. 스승의 가르침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인륜에 어긋나는 짓에 대해서는 종교에 앞서 인간의 이름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인간을 포기한 종교란 없으니 그건 종교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강도질을 외면하는 것은 강도를 방조하고 지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두환씨가 광주에서 양민을 학살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안기부 지하실에서 간첩으로 조작하는 것에 대해 침묵했던 것과 무엇이 다를까. 피해자나 가해자나 다 같이 불쌍한 중생들이니, 화해와 상생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는 것은 말장난이지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니다. 정치란 올바름을 세우는 것이라 했다. 가장 종교적인 것은, 가장 인간적인 것이고,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권력과 갈등을 빚지 않기 위해, 그래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불의에 눈감는 것을 항용 정치불개입, 탈정치 운운했던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런 일도 있었다. 봉은사 사태가 그것이다. 직영 사찰로 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다. 교단 최고지도자 스님이 여당 대표와 만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다. 비록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그 자리에서 종단 내부의 문제가 거론되고, 정치적 성향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면, 이만큼 저속한 정치행위는 없을 것이다. 정치가 교단에 개입할 경우 어른 스님이라면 누구보다 단호하고도 분명하게 처신을 했어야 했다. 직할 사찰 문제가 종단 안에서 논의되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중단하고 외풍부터 막는 게 종단의 도리다. 결과적으로 좌파 스님으로 거론됐던 분들은 이미 산으로 들어가거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무슨 영문이지 몰라도 정교분리 탈정치 구호 속에서 가장 저질스런 정치 행위에 종단은 말려 버렸다.

2011년 예산안을 여당이 날치기 처리하면서 종단은 다시 한 번 낭패를 당했다.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몽땅 구겨 가며 확보한 예산이 몽땅 사라졌다. 한나라당이 정부안을 서둘러 처리하다가, 불교 쪽 민원을 당 차원에서 반영한 것들이 몽땅 사라져버렸다. 명분도 실속도 다 잃어버렸다.
깨달음과 지혜의 종교라는 불교계로선 치명상이 아닐 수 없다. 여당 관계자에 대한 산문 출입금지 등을 공언하고 있지만, 사실 여당 사람들은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국 살림살이를 정부 지원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정부 협조 없이는 그나마 수입원도 제약받게 된다. 게다가 불제자의 분포나 재정적 기여로 볼 때 영남 쪽이 압도적이고, 이들의 정치적 성향이 한나라당 쪽이다. 결국 선거 때가 되면 결국 영남의 대찰을 시작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이들은 본다.
결국 종단은, 사회적 현안이자, 종교적 실천의 핵심적 과제에는 등을 돌렸다. 구제역도 그렇고 4대강 사업도 그렇다. 반면 가장 멀리해야 할 은밀한 정치적 거래에는 발을 담갔다. 도대체 무슨 정치는 하고, 무슨 정치는 하지 말자는 것인가.

2. 역사적 연원

사실 한국 불교만큼 정치적인 불교는 없었다. 말로만 정교분리, 탈정치를 이야기했지, 역사적으로 불교가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은 별로 없었었다. 신라불교는 왕실 불교였다. 사회질서를 합리화하고, 지배계급의 억압과 수탈을 교리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대신, 권력으로부터 막강한 부와 영향력을 제공받았다.
신라 말 중앙권력이 쇠퇴하던 시기 도입된 선종은 개유불성이라는, 당시로서는 혁명적 교리로 시대정신을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발흥하는 지방토호세력이 꿈꾸던 역성혁명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고, 선종 사찰은 그들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후삼국시대 때 미륵신앙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중앙의 권력도 지방의 권려도 갈아엎어버리고 싶은 민중의 혁명 이데올로기였다. 그것이 궁예나 견훤에 의해 차용돼, 정치적으로 이용됐을 뿐이다. 고려 왕건은 초기 선종의 영향을 깊이 받았지만, 집권하면서부터는 불교를 왕권신수설의 이데올로기로 이용했다. 그 자신은 생불이 되어, 부처님과 같은 반열에 놓기도 했다.

신라와 고려 역대 권력자들은 불교 교리를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이용했고, 불교계는 이를 교세 확장과 정치경제적 영향력 확대에 이용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 불교는 정권의 부침과 관계없이 본능적으로 권력자의 지근거리에 머물며 생존하는데 익숙했던 셈이다. 조선 왕조가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배경에는 왕실 불교의 이런 폐해도 한 몫 했다. 고려 때 사찰은 왕실로부터 받은 대규모 토지를 바탕으로 지방의 권력자로 행세했다. 고려말 신진사대부에게 불교는 혁파되어야 할 가장 큰 적이었다.

조선조에서도 불교는 권력으로부터 집요하게 탄압을 당하면서도, 권력자 곁으로 다가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들의 눈에 들기 위해 내세웠고, 지금도 높이 들고 있는 기치가 바로 호국불교다. 그러나 말이 국가이지, 봉건제 아래서는 왕실과 귀족, 현대에선 정권을 보위하는 종교로 기능했다. 그러다보니 불교는 스스로 설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지 못했다. 일제하에서는 하다못해 총독부에 의지해 민원을 해결하려 하기도 했다.

대중불교 화두는 이런 맥락에서 제기됐다. 만해 선사가 조선불교유신론이나 조선불교개혁안에서 대중불교를 부단히 강조한 것은 권력자가 아니라 민중 속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불교가 바로설 수 있을 뿐 아니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만해 선사는 승려만의 불교 혹은 사찰만의 불교에서 벗어날 때, 산간에서 가두로, 승려 중심에서 대중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것이 불교유신론의 뼈대이기도 하다.

대중불교의 화두는 지금도 유효하다. 자립기반이 없는 까닭에 겉으로는 정교분리를 표방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정교 유착을 통해 경제적 지원을 갈망했다. 그러다 보니 정법 실천은 사라지고, 깨달음과 지혜의 가르침 또한 소수 승려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불교는 구세(救世)의 가르침이요, 중생제도(衆生濟度)의 가르침인 터에 부처님의 제자 된 사람으로서 독선 혹은 염세에 빠져 있어서야 되겠는가.” 이중성을 질타하는 만해 선사의 말씀이 서늘하다.

3. 과연 쇄신할 자세는 되어 있는가

앞에서 듣기 껄끄러운 정치성 문제를 거론한 것은 과연 종단의 쇄신 노력에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 따져보기 위함이었다. 그건 단순히 아픈 곳을 한번 찔러보려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성찰 없이는 한국불교의 근본적 쇄신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기독교의 예수는 바로 그 인간 구원이라는 가장 종교적인 문제이며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문제를 건드렸다가 십자가에 달렸다.
깨달음과 지혜의 종교인 불교도 마찬가지다. 중생 제도만큼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과제는 없다. 불살생 계율만큼이나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요구하는 것도 없다. 구제역 문제가 그렇고 4대강 사업도 그렇다. 이런 현안이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시키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라면, 이를 부추기는 현실의 체제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불교적 관점과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개인과 사회의 불행과 파멸을 재촉하는 그 탐욕의 체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을 오로지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켜 말한다면, 부처님은 돌아앉을 것이다.

1965년 끝난 2차 가톨릭 공의회는 가톨릭에 일대 쇄신을 가져왔다. 구원의 문제, 타종파의 교리 문제, 전례, 해방과 정치적 투쟁의 문제 등과 관련해 2000년 가톨릭 역사를 전복시키는 전기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이는 지금까지 서구 문명을 이끌어왔고 또 세계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기독교 안에도 심각한 충격과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그 시작은 1962년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가 발표한 회칙의 제목은 ‘회개를 위하여’였다. 회칙의 열쇠말은 ‘아조르나멘토, 즉 회개를 통한 쇄신’이었고, ‘현대의 요구에 응답하는 공의회’가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슬로건이었다.

어떤 불사 혹은 사업이건 가장 선행돼야 하는 것은 반성이다. 역사적 반성과 실존적 성찰이다. 종교라면 특히 그러해야 한다. 단순한 현상적인 반성 차원을 넘어 존재론적 성찰과 전복적인 참회가 선행될 때 비로소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고, 잡다한 이론들을 하나로 일치시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솔직히 말해 미심쩍은 게 있다. 진짜로 21세기 한국불교를 새로이 디자인하겠다는 것이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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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종교 불교, 종단 차원서 수목원 추진해야” (법보신문 불기2555(2011)-02-08) 
제1회 불교중흥을 위한 대토론회-발제문-원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