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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한국 불교의 현재적 성찰과 미래의 방향_원담스님
1. 여는 말
‘한국 불교의 현재적 성찰과 미래의 방향’이라는 주제에서 ‘현재적’이라는 단어는 시간의 어느 한 지점이라는 의미보다 훨씬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존재하는 형태는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전·후의 인과성, 연속의 순환성, 다양함의 연기성 등이 시간과 공간, 혹은 역사와 사회성 안에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현재적’ 이라는 의미의 이해를 위해 초기 교단을 비롯한 역사속의 불교와 현재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이 시대의 담론을 모아 미래의 방향까지도 일정 부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을 살피는 것은 문제에 접근하는데 너무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접근성의 모호함과 효율성도 대단히 부족하기에 교단사의 중요한 특징과 한국 불교의 일반적 이해 등을 몇 묶음으로 정리하고 더불어 시대별 특징을 부연하였다. 이번의 대토론회가 학문적 관점을 논하기 보다는 열린 사유와 성찰을 통해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고 그 기반 위에서 한국 불교의 미래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라 규정하고 1) 교단사의 흐름 2) 현재적 성찰 3) 미래의 방향으로 정리 하였다.
2. 교단사의 흐름
교단사는 한국 불교의 현재적 성찰과 미래의 방향을 말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오늘의 한국 불교를 잉태한 어머니의 모습이고 우리의 가장 중요한 가치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1) 불교의 성립 불교의 출현 내지 성립이 가지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샤머니즘 혹은 토테미즘의 극복, 둘째 유일신, 다신, 범신론 등과 차별되는 신앙형태의 출현, 셋째 깨달음의 평등화이다.
가. 샤머니즘 or 토테미즘의 극복 샤머니즘 혹은 토테미즘은 기본적으로 부족적인 혹은 지역적인 신앙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보편성과 합리성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불교의 성립은 보편적이지 못하고 비합리적인 동시에 지역적이고 우연론적인 성격이 강한 샤머니즘 혹은 토테미즘과 달리 인간세계에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신앙과 가르침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나. 유일신, 다신, 범신 등과의 차별성 불교는 기본적으로 신적인 관념을 부정한다. 곧 그것이 유일신론적이든, 다신론적이든 아니면 범신론적이든 외부적인 요인에 의하여 인간의 삶이 결정되고, 때문에 그 외부적인 요인에 인간이 의지해야 한다는 관념을 부정하는 것이다. 불교 이전에 존재했던 다양한 신앙과 가르침의 방식을, 불교는 연기적 시각과 연기적 방법론에 의거하여 극복함으로써 인간의 삶에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다. 깨달음의 평등화, 보편화 이처럼 불교는 연기적 관점에 의하여 우연론적이거나 외부의 결정론적인 시각의 비합리성을 명쾌하게 제시함으로써 깨달음, 달리 말하면 완성된 살림살이가 인간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였다. 곧 불교는 연기적 관점에 의해서 과거의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할 뿐 아니라 그 길을 모두에게 개방하였다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
2) 붓다의 가르침 그렇다면 그와 같은 불교를 성립시킨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인가? 구차한 사상에 대한 형식적 논의를 피하고 가르침의 실질을 논한다면 다음과 같이 세 항목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에 대한 반성을 전제한 상태에서, 현재에는 결여되어 있는 것이면서 우리가 오늘 날 반드시 추구해가야 할 붓다의 가르침을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가. 수행하고 정진하라 나. 보살의 길을 통해 선업의 삶을 살으라 다.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 욕망과 탐닉을 추구하지 마라
3) 붓다의 입멸이후 붓다의 입멸 이후 불교는 다양한 형태의 변화양상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애초 불교가 추구했던 연기적 관점에 의한 우연론적이고 결정론적인 시각의 극복이라는 지향점은 점차 희석되었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대승사상이 새롭게 출현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새롭게 종파불교를 출현시켰으며, 나아가 다양한 신앙체계를 통해 불교의 면모를 일신해갔다고 생각된다.
가. 대승 사상의 확산 대승사상은 애초부터 불교가 가지고 있던 깨달음의 개방성과 깨달음의 현재적 실천성을 재확립해가는 과정에서 출현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전의 부파불교와는 달리 사상과 신앙 양 측면에서 현장으로부터의 요구 곧 중생이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또 중생이 좀더 실질적인 실천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가르침을 표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한동안 제한되었던 깨달음의 접근가능성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열린 지평의 세계로 견인해내었다.
나. 종파 불교의 부흥과 난립 대승사상이 중국에 전해졌을 때 중국인들은 특별히 구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래된 다양한 불교경론의 사상들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교판의 체계를 세웠다. 그리고 그 교판의 체계에 의지하여 종파를 건립하였다. 이 종파불교는 자신들이 이해한 독특한 불교사상의 체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독특한 신앙과 실천의 체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다. 신앙적 체계 성립 다양한 종파불교가 건설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실천과 신앙의 체계가 제시되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만큼 실천의 방법에 대한 고민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상과 신앙의 체계들은 점차 일관성 있는 흐름으로 정립되어 갔다.
4) 한국 불교의 전래
가. 변방의 나라, 중앙 집권을 위한 국가 권력의 접촉 불교가 동전하는 경로의 동쪽 끝에 있었던 한국은 그 지리적 입지 때문에 상당부분 중국화된 불교를 수용하는 입장이었다. 초기의 수용과 공인 과정은 고대국가 체제의 성립과 맞물려 있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권력은 신앙적으로는 다양한 샤머니즘ㆍ토테미즘 신앙을 통합하는데 불교를 활용하였고, 이를 통해서 중앙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나. 신라, 고려의 부흥기 하지만 일단 공인되고 안정화된 상태에 이르면서 불교는 사상적으로 신앙적으로 급속하게 정비되었다. 그리고 기존의 토착신앙을 흡수한 바탕 아래에 고도의 정치한 불교사상과 문화를 발전시켰다. 통일 이후의 신라와 고려는 그러한 불교 융성시대를 대변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다. 조선의 억불 정책 : 산중 불교, 승려교육의 하향 등 그러나 고려 말에 이르러 불교는 자체의 활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였고, 이것은 외적 권력과의 결속하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고려를 대체하여 새롭게 등장한 조선은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채택하면서 억불정책을 시행하였고, 이것은 불교의 쇠퇴로 곧장 연결되었다. 조선조 불교의 쇠퇴는 고려 말 불교의 자생력 상실, 그리고 성리학이라는 국가이념을 채택한 조선시대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위정자들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불교 억압 정책에 기인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승려교육의 질은 끝없이 부실해졌으며, 불교는 문화와 사회의 중심부인 도시에서 물러나 산중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입장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라. 식민지 시대 구한말과 식민지 시대는 한국불교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왜곡과 억압의 시대이기도 했다. 곧 한편으로는 조선시대에 쇠락했던 불교를 부흥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민족문화와 신앙을 대표하던 불교의 입장으로 보자면 또 다른 시련의 시기일 수밖에 없기도 했다. 이 시대에 불교는 정통성의 회복과 동시에 근대화를 향한 다양한 시도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급속도로 유입되는 일본불교와 일본문화에 민족불교, 민족문화를 대표하여 쇠잔한 힘으로 저항해야만 했던 질곡의 시기이기도 했다.
3. 현재적 성찰
편의상 한국 일반사의 흐름과 한국 불교 교단사로 나뉘었다. 한국 불교의 현재적 성찰의 의미가 단순한 교단사적 의미로 정리하기엔 오류의 심화가 염려되고 또한 성찰의 깊이를 채우기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시기를 규정함에 있어 통상적 근현대 개념인 조선 말, 식민지 시기를 편의상 사용하였다.
1) 한국사
가. 서구 종교의 유입 구한말과 국권상실 시대를 거쳐 근대화에 이르는 지난 약 100년의 역사는 서구화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민족문화와 종교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례 중의 하나는 서구 종교 특정하자면 기독교(가톨릭, 개신교)의 유입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는 서구물질문명의 우위와 근대화의 과정에서 미친 서구의 영향력에 기대어 급속도로 한국사회에 유입되었고 그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나. 광복 : 분단, 자본주의, 사회주의 광복 혹은 해방은 민족사의 새로운 전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민족사의 새로운 질곡을 잉태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대 세력이 이 땅의 남북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민족사 역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커다란 양대 세력의 갈등 속에 매몰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족사는 분단과 내전이라는 참혹한 질곡을 겪게 되었다.
다. 경제 성장 : 교육, 의료, 복지, 문화, 급식 분단과 내전 이후 남북한은 경제성장에 초점을 둔 양극화 시대의 경쟁 상태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 와중에 우리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으며, 동시에 그러한 유례가 없는 경제성장은 다른 많은 부분에 있어서의 희생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라. 민주화의 시대 ’80년대 말을 지나 ’90년대와 21세기에 초반부까지의 역사는 한마디로 민주화의 시대라고 평할 수 있다. 이 시기 우리 역사는 다양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경제성장 때문에 희생되었던 많은 부분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 결과 ‘민주화’라는 말로 대변되는 새로운 경험을 역사 속에 포함하게 되었다.
마. 지식층의 서구화 근대화 이후 현 시점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지식층에 나타난 가장 뚜렷한 현상 중의 하나는 ‘서구화’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근대화’는 서구 닮아가기 곧 서구화였으며, 그 과정을 주도한 것은 역시 사회의 지도층일 수밖에 없는 지식층이었다. 이 지식층들은 유학 등을 통해 다양한 서구문화를 체험하고 들여왔으며, 그것을 자신들이 사회를 주도하는 이니셔티브로 활용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와 같은 서구 종교가 확산된 것 역시 이 지식층의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서구 경험이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은 서구문화와 문명의 우위성만 고려한 것이었지 민족문화와 문명에 대해서는 무분별하게 격하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바. 다종교, 다문화, 다민족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에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경험들이 한국인들에 의해 유입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유입된 다양한 민족구성원들 역시 한국사회에 다양한 문화경험을 제공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서 한국사회는 상층부와 하층부 모두 다종교, 다문화, 다민족 사회라는 지금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세계로 돌입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화두 중의 하나로 떠오른 ‘다원주의’라는 말 역시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면, 이러한 현상들 속에서 다자간의 공존과 평화를 지향하고자 하는 바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교단사 여기서는 앞서 살펴본 한국일반사를 다시 교단사의 차원에 국한시켜서 살펴본다.
가. 일본 불교의 유입 일제는 조선 진출의 초기부터 일본불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일본불교 혹은 일본의 근대는 조선불교에 있어서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한 가지는 침략자로서의 모습이었으며, 또 다른 한 가지는 근대화의 모범사례로서였다. 구한말과 식민지 시대의 조선불교는 줄곧 이 두 측면 사이에 고민하고 있었다. 식민지 시대의 조선불교의 근대화 과정과 일본 총독부의 조선불교에 대한 통제 정책들은 그러한 측면들을 포착해서 보여준다. 위정자와 불교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일제시대의 불교정책은 오늘날까지 이르는 정부의 다양한 불교 통제정책의 시초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통제정책은 일본불교의 유입 혹은 조선불교의 강제적인(일부는 자발적인) 일본불교화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나. 통합 종단의 출범 광복 이후 한국불교는 분단과 전쟁이라는 민족사의 질곡을 경험하였으며, 이 질곡의 과정 중에서도 일본불교화(왜색화)된 불교를 지양하고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정화운동과 통합종단의 출범에 이르는 과정은 한편으로는 또다른 왜곡의 과정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통성을 재확인하고 재정립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다. ’67년 국립공원법 발효 : 각종 규제법령 그러나 불교계가 겨우 내부의 분열을 봉합했을 때, 이번에는 국립공원법을 비롯한 다양한 규제법령들이 불교의 성장과 전망을 제어하는 새로운 기제로 등장하였다. 일제의 사찰령을 계승하는 다양한 국가정책들은 그나마 인정해야 하는 최소한의 보존적 성격 이외에는 불교의 자주성을 극단적으로 침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재권력에 의해 한 번 고정된 정책들은 부분적인 개선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불교발전과 불교 자주성 확보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라. ’94년 종단 개혁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 당해온 불교계는 그 왜곡의 연결고리를 끊고자 많은 노력들을 기울였는데, ’94년의 종단개혁은 사회전반의 민주화 흐름을 궤를 같이하는 종단 차원의 민주화 혹은 개혁종단의 기점이 되었다.
3) 성찰을 위한 제고 이상의 아주 개략적인 사적 고찰에 근거하여, 여기에서는 우리 한국불교가 당면하고 있는 현재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미래의 방향을 논하기 위한 당연한 전제이기도 하다.
가. 승가 교육의 재정립 통합 종단 출범 이후, 우리 종단의 교육관련 사업들을 되돌아보면, 대단히 형식적이면서 한편으로는 대단히 임의적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종단 차원에서 제시된 지향점과 그 지향점에 근거한 내실있는 체계의 도입, 그리고 그것을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이 비효율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도의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물론 중앙승가대학을 비롯한 승가교육기관에의 투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불교계 전반이 외형적 불사 위주의 사업에 치우쳐 있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으며, 그 와중에 가장 중요한 교육사업은 소외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이다.
나. 한국 사회 담론의 참여 : 민주화, 통일, 복지, 인권, 환경 등 그간 한국불교는 한국사회 변화의 주도자로서 참여한 경험이 이웃 종교나 사회 제단체에 비해 매우 적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불교계의 현실사회에 대한 관심은 빈약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불교가 현실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하는 심각한 저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불교가 전체와 개인의 차원 각각에서 현실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과 참여를 견지하고 있을 때만, 한국불교는 제 목소리를 가지고 한국 사회의 담론의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다. 재정의 투명화, 집중화 현대 사회에서 그리고 종교집단이라는 측면에서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 자체가 곧장 사회 차원의 신뢰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 차원이 아니라 집단 차원에서의 투명성 확보와 자정기능의 확보를 여구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사회가 부패할수록 종교집단의 그러한 자기투명성은 더욱 강하게 요구된다. 우리 불교계는 과연 사회 차원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는가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투명하지 못한 재정은 집중화에 저해 요소가 된다. 급변하고 규모화가 확대되었으며, 효율성을 고도로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일정 부분 재정의 효율성과 집중성을 요구하게 된다. 한국불교 특히 우리 종단은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라. 도심 포교 집중화의 실패 오늘날 사회의 주요 현상 중의 하나로 도시화와 인구밀집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80% 이상이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볼 때, 우리 불교는 도시의 포교에서 얼마나 성공적인가? 결국 인구의 80%에 대해 일상적인 포교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불교계의 투자는 대부분이 전통사찰로 지정된 산중 사찰에 집중되어 있으며, 단순하게 표현하면 우리는 한국 인구 8-90%를 포교의 사각지대에 방치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마. 조직의 현지화와 다양화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집중적이면서 동시에 지방적이다. 동일한 성향이 한국인들에게서도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서울이라고 하더라도 강남과 강북이 다르고 강동과 강서가 다르다. 시민들의 관심 역시 다양하며 그들의 활동영역 역시 그렇다. 거기에 비하면 중앙집중적인 제도와 지방자치적인 제도를 외형적으로는 일찍부터 갖추고 있는 우리 불교계가 현지화와 다양화에 있어서는 대단히 성공적이지 못한 사례로 생각된다. 그러한 부분에 대한 관심조차 이제야 겨우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에서 해주어야 할 다양성의 겸비와 그 다양성에 기초한 지방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중앙의 그러한 역할을 지원해야 할 지방은 그러한 의식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바. 세계화에 대한 동력 부재 : 수행법 표준 체계, 해외 교구 종교간 공동선 실현 우리 교계 일각에서는 근자에 이르러 수행체계를 표준화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이것은 내적인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외적인 정체성의 확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시급한 문제이다. 최근 그러한 작업들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준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필요성의 인식이나 구체화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미비하다. 이미 세계화와 동시에 지방화라는 대세속에 있는 만큼 그 기본적인 동력을 확보하는 과정으로서 수행체계의 정비와 세계 속에서 종단과 한국불교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부재의 상태라고 판단된다.
사. 언어 체계의 대중성 실패 “여전히 불교는 고전(古典)이다.” 여기서 고전이란 대중이 읽기에 쉽지 않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게다가 그것은 ‘옛날의’ ‘고전’이다. 현대의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언어, 이해할 수 언어로 불교는 말해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미 한글화 사업이 개별적이든 집단 차원의 것이든 100년 가까이 진행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교어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어려운 언어로 남아있다. 최근에서야 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적지 않은 분야에서 ‘좀더 쉬운 언어로 접근할 수 있는 불교’가 시도되고 있지만, 체계적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 종단 차원에서 또는 한국 불교계 전체 차원에서 관련 인력의 양성과 활용에 투자를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그 실질적인 접근은 전혀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아. 재가 신자의 교육, 역할 확대 부족 한국불교에서 재가 신자는 이중으로 소외되어 있는 상태이다. 곧 출가자로부터 소외되어 있으며, 재가자 스스로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출가자들은 은연중에 그리고 공공연히 재가자의 우위에 있음을 내보인다. 한편 재가 신자는 그러한 출가자의 입장을 무의식중에 수긍하고, 그 수긍으로부터 재가 신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의무와 권리를 방치해버린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출가자와 재가자 사이에 공동체의 구성원이란 기본적인 인식이 부재하고, 그러한 그릇된 인식이 서로를 배제함으로써 결과된 것이라 생각된다. 심하게는 한국불교에는 출가자는 있어도 재가 신자는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까지 재가 신자로서의 생활을 확대 적용해나갈 때까지는 불교 재가 신자로서의 의미영역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은 대부분 재가신자들의 영역과 역할을 인정하지 못해온 출가자에게 책임이 있다.
자. 전통 문화의 계승 발전 우리 사찰 그리고 불교문화는 전시관 혹은 박물관 문화이다. 살아있는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전시관이나 박물관 안에서만 살아 움직이는 것이며, 현실 사회 속에서는 옛날의 것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다만 때로 대중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일부만이 현실 속에 불려 들어와서 새롭게 기능을 부여받지만, 그 대부분은 ‘각박한 현실로부터의 일시적으로 피하는 방식’으로서의 의미라고 생각된다. 전통 문화의 계승발전은 현실 속에서 효용성을 발휘하는 전통문화 되살리기와 새롭게 바꾸어내기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의 전통문화를 외형적 차원에서만 계승하는 양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4. 미래의 방향 한국 불교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우리의 정체성과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그 바탕 위에서 한국 사회에서의 역할, 또한 인류 문명의 보편적 종교로써의 역할, 그리고 천 칠백년 한국 불교의 수행정신과 전통을 이 땅과 지구촌을 향해 제시하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시대에 나아갈 방향이고 원력이다. 특히 곧 다가올 동북아 문명의 새로운 역동의 시기는 많은 역사성과 시사성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동북아 문명의 새로운 르네상스시대에 대한 내용도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 불교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했기에, 그 문제로부터 나아가야 할 방향 역시 일정 부분 제시되었다고 생각된다. 여기에서는 나아가야 할 방향을 표제로 드러내어 간단히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가. 다양함의 존중 나. 종교간 화합과 공동선 실현 다. 동북아 문명의 역할 강화와 증대 라. 공동생활의 확산(수행의 전통) 마. 문명사적 담론의 적극 참여
5. 닫는 말
시대와 지역에 따라 혹은 환경과 문화에 따라 현상과 존재에 대한 나와 우리의 관점들은 다르거나 변화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또한 여럿인 이웃과 타인이 있다면 더욱 더 그러 할 것이다. 이제 가까이는 한반도 내, 널리 인류 문명사는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다원화, 다문화, 다종교가 어울려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 흐름 속에 중요한 덕목은 상호 존중과 가치의 합의, 공동선의 실현 등이다. 한국 불교는 한국 사회에서도 안팎으로 강력한 시대적 요구와 도전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세계의 드넓은 광장에도 나아가야 하는 시대적 부응을 받고 있다. 이 대토론회의 담론이 신라 원효의 화쟁론과 고려 보조의 정혜결사, 조선 서산, 사명의 호국불교와 만해의 불교 유신, 해방 후 봉암사 결사와 ’94년 종단 개혁의 정신을 잇는 한국 불교의 새로운 결사를 위한 현재적 성찰과 미래의 방향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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