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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94개 선원서 하안거 마무리
<연합뉴스 2006/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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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안거 마치고 만행 떠나는 스님들 충남 예산 덕숭총림 수덕사에서 3개월간의 여름철 집중 수행인?하안거(夏安居)에 들어갔던 스님들이 8일 해제(解制)일을 맞아 해제 법회를 마치고 만행을 떠나고 있다./조계종 총무원 제공/문화/?006.8.8?(서울=연합뉴스) | |
(예산=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불교 승려들의 여름철 집중 수행인 하안거(夏安居)가 8일 해제(解制)됐다.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에 따르면 음력 4월15일부터 3개월간 진행된 이번 하안거에는 전국 94개 선원에서 모두 2천319명의 스님이 용맹정진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각 사찰과 선원에서 하안거 해제 법회가 열렸으며, 충남 예산 덕숭총림 수덕사의 암자인 정혜사 능인선원에서 수행한 25명의 스님들도 해제 법회를 마치고 만행에 나섰다.
수덕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진행된 해제 법회에서 덕숭총림 방장 원담(圓潭·80) 스님은 수좌인 설정(雪靖) 스님이 대독한 법문에서 "티끌 번뇌를 활짝 벗어나는?일은 예사롭지 않으니 노끈을 꼭 잡고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어다. 한 차례 추위가?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어찌 얻으랴"라는?황벽(黃檗)?선사의 어록을 소개하면서 "해제했다고 해서 방심하지 말라. 해제란 생사영단(生死永斷)을 해야만 해제이니, 오늘이 다시 시작하는 날이라 생각하고, 발심을 해서 새로운 결제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수덕사 해제 법회에는 산내 암자인 정혜사 능인선원 수행자를 비롯해 보덕사, 견성암의 스님 등 220여 명이 참가했다.
[인터뷰] 덕숭총림 수덕사 수좌 설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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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총림 수덕사 수좌 설정 스님 충남 예산 덕숭산 자락에 자리잡은 덕숭총림 수덕사 수좌(首座) 설정(雪靖) 큰스님./조계종 총무원 제공/문화/젨젨젨젨젨 2006.8.8?(서울=연합뉴스) | |
"수행정진은 사유·분석·체계화를 버리는 것" "사회갈등은 '진실'이 없는 불신에서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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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지혜가 영글지 않으면 중생을 구제하기 어렵습니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자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위험합니다. 불제자의 수행정진은 중생을 구할 지혜를 얻기 위한 시간입니다." 젨?
충남 예산 덕숭산 자락에 자리잡은 덕숭총림 수덕사는 조계종?제7교구?본사로 우리나라 불교계 5대 총림의 하나이다.
백제말 숭제(崇濟) 법사가 창건해 고려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한말(韓末)에 경허(鏡虛) 선사가 머물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키고 그의 제자 만공(滿空)?선사가 중창해 500년 조선왕조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끊어지려 했던 한국 불교의 선맥(禪脈)을 다시 이은 곳이다. 개화기 문필가이자?신여성이었던 김일엽 스님이 이곳 견성암에 머문 것을 계기로 대중에게?널리?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만공 스님이 1932년 세운 정혜사 능인선원은 덕숭산 정상 가까운?곳에?위치한 덕숭총림의 대표적 비구 선원이다. 밤낮으로 용맹정진하던 수도승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만행을 위해 선원의 입구로 나서면 멀리 서해 바다와 홍성읍이 내려보인다. 이른 아침 매미의 시원한 울음을 싣고 선원에 선선한 산바람이 불어올 시간,3개월의 수행을 마친 수행자들은 걸망을 짊어진 채 좁은 오솔길을 따라 하산한다.
8일(음력 7월15일) 하안거(夏安居) 해제일을 맞아 이곳의 수행 가풍을?듣기 위해 3개월간 수행을 이끈 덕숭총림 수좌(首座) 설정(雪靖·66) 큰스님을 찾았다.?세속과 인연을 끊고 수행에 몰두하다 선방에서 막 빠져나온 노스님의?얼굴은?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하늘처럼 정갈했고,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자태는 엄격하면서도 편안하고 은은한 기운을 내뿜었다.
"정진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 온힘을 쏟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공부하는 법은 사유하고 분석하고 체계화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버리는 공부를 합니다. 생각이 다 없어져 버려서 사실 할 말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젨?
바람 한 점 일지 않아 거울처럼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을 던지듯 큰스님에게?"수행의 일과는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물었다.
큰스님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저녁 9시에 취침하는 일정은 다른 선원과 다를 바 없으나 낮에 일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 덕숭총림의 전통"이라고 설명했다.?수행자들은 정진하는 시간 외에 채소를 길러 자급자족한다거나 도량 주변의 풀베기 등?울력(공동 노동)을 자주 했다고 한다.
"수행자들은 죽비를 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공부할 만큼 이미 수행경력이 많은 분들입니다. 자율적으로 공부하되 3개월간 바깥출입을 할 수 없고 웃거나 떠들어서도 안됩니다. 다른 선원과 달리 자유정진의 시간조차 주지않고 엄격한 규율 속에 공부를 진행했습니다." 젨?
올해 하안거가 진행되는 동안 바깥세상은 태풍과 장맛비로 고통이?컸다.?이에 대해 큰스님은 "수행자들은 부모형제를 떠나 불가에 들어섰지만 사회적 역할을 떠나거나 내팽개친 것은 아니다"면서 "사회의 고통을 생각하며 더욱 정진에 몰두해 지혜를 얻어 중생을 제도하기를 간절하게 기원했다"고 말했다. 바깥의 고통을 모른 체 할 수 없지만 우선 수행정진을 통해 먼저?지혜의?문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에 빠진 이를 구하려면 먼저 수영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 이치와 같다. 큰스님은 수해현장에 찾아가진 못했지만 주머니를 털어 피해민을 돕고자 했고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기원했다고 밝혔다. 경허와 만공선사 등 한국 근현대 불교의 선(禪)을 중흥시킨 선지식들이?논밭에서 일하면서 수행했던 것과 다르게 요즘들어 선방에 가만히 앉아 참선하는 것은?죽은 선(禪)이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 큰스님은 "근자에 와서 힘든 일을?하지?않으려 하는 등 해이해진 측면이 있다"면서 "수행자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쉽고?편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쉽게 산다는 것은 공부를 안하고 명예나 돈 등에 마음을 기울게 함으로써 수도자 본래 모습을 잃게 만든다"며 "육체를 항상 움직여야 하며, 스스로 힘든 길을 선택하는 것이 수행자로서 바르게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의식주가? 풍족해지면 편하려는 속성에 빠져 발심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일정한 단계에 이르기까지 좌선(坐禪)을 해야 한다"고 말한 큰스님은 "참선이 동정여일(動靜如一)의 경지에 이르면 잠자면서도 화두를 들게 된다"고?덧붙였다. 큰스님은 조계종에서 선(禪)을 보급하는 간화선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는 것에 대해 "사회가 정신적 갈등을 극심하게 겪는 때에 선의?보급은?승속이나 타종교를 막론하고 정신적 치료법으로서 매우 중요하다"면서 "다만 '간화선 지도자'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치원?선생이나 보모와 같이 선의 기초단계를 보급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큰스님은 "북한 미사일 발사 등으로 빚어진 한반도 긴장 상황,?국내?정치권의 갈등 등에 대해 바깥사람들로부터 간간히 소식을 들었다"면서 "우리 민족의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면서 "주변 열강이 남북통일을 바라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있으므로?자주적 통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남북 공히 민족적 각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갈등은 불신에서 오고, 그 불신은 진실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면서 "정치든 뭐든 자기 소임에 충실하고 남을 속이려 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면 너무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해 여유를?갖지 못함으로써 상대를 존중하지 못하고 적대적 관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민족 특유의 은근과 끈기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고도 말했다. 큰스님은 "불가의 화두는 그동안 살아온 습관, 이해관계, 분별하려는 것,?일체의 못된 정신을 잘라버리는 칼과 같은 것"이라며 "수행자들은 3개월간의 하안거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화광동진(和光同塵·진리의 빛을 세상과 함께한다)의 마음을 갖고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와 긍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철수개화(鐵樹開花·쇠나무에서 꽃이 피고)와 화중생련(火中生蓮·불 가운데 연꽃이 핀다)이 불법 가운데 있고 그것이 선(禪)이다"라며 세상의 논리와 다르지만 진실을 다하려는 마음에 참선의 길이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설정 큰스님은 1955년 수덕사에서 혜원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으며?조계종단 개혁회의 법제위원장, 제11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사람들] 하안거 마친 벽안의 현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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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안거 마친 벽안의 현각 스님 8일 충남 예산 덕숭총림 수덕사에서 3개월간의 여름철 집중 수행기간인 하안거를 마친 미국 출신 현각 스님이 만행을 떠나고 있다./조계종 총무원 제공/문화 2006.8.8?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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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이제 겨우 깨달았습니다"
(예산=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오로지 시작입니다. 나의 공부가 얼마나 부족한지 이번 수행에서 겨우 깨달았습니다."
여름철 집중 수행기간인 하안거를 마치고 8일 덕숭총림 수덕사의 능인선원 산문을 나서는 길에 만난 미국 출신 현각(玄覺·화계사 국제선원장)?스님은?"하안거가 동안거보다 힘들다"며 얼굴을 흥건히 적신 땀을 닦아냈다. 현각 스님은 베스트셀러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108배를 하루에 다섯 번씩 반복하는 수행을 계속했는데 너무 더워서?힘이?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선지 제겐 겨울철 동안거보다 하안거가 훨씬 힘들게 느껴집니다. 물론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는 가치판단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
현각 스님은 "힘든 수행을 하면서 미묘한 마음의 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면서 "무엇보다 그동안 내 공부가 엉터리였고,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큰 성과"라고 말했다.
그는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재작년?열반한 스승 숭산 스님이 "세계평화는 불가능하고 필요없다"고 말한 역설을 상기시켰다.
"은사 스님이 그 말씀을 하셨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전쟁을 다스리지 못하면 평화는 불가능합니다. 이번 철(계절)부터 화계사 강론 때 이 문제를 깊이 다루려고 합니다."
그는 하안거 후 계획을 묻자 "물처럼 바람처럼 떠돌 것"이라며 미국과 유럽?등에서 포교와 강론활동을 펼칠 계획이 있음을 내비쳤다.
"죽을 때까지 공부할 것"이라고 다짐한 그는 "공동 생활을 했던 다른 스님들이 보는 데서 너무 튀는 모습(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바쁘게 산문을 나섰다.
깨달음 얻고 속세를 바라보네
깨달음 얻고 속세를 바라보네
<동아일보 2006/8/9/수/종합2면>

정진의 끝에서 내려다보는 사바세계는 어떻게 다가올까.
충남 예산군 수덕사 내 정혜사 능인선원에서 석 달간 꼬박 수행 정진하며 하안거(夏安居)를 마친 스님들이 8일 산문(山門)을 나서기 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속세를 내려다보고 있다.
수덕사(예산)=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석 달 하안거 끝내고 만행 오른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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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하안거 끝내고 만행 오른 스님들
<한국일보 2006/8/9/수/종합1,문화23면>
열반에 닿아야 수행의 끝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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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여름 집중 수행인 하안거(夏安居)가 8일(음력 7월 15일) 끝났다. 안거는 여름과 겨울 석 달 동안 절 문을 나서지 않은 채 참선과 수행에만 정진하는 행사다.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에 따르면 음력 4월 15일부터 시작한 이번 하안거에는 전국 94개 선원에서 2,219명의 스님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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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9시, 충남 예산 덕숭총림의 수덕사 대웅전에서 열린 하안거 해제(解制) 법회에는 산내 암자인 보덕사, 능인선원, 견성암에서 하안거를 한 스님과 신도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덕숭총림 방장 원담(圓潭·80ㆍ사진) 스님은 수좌인 설정(雪靖) 스님이 대신 읽은 법문에서 “해제했다고 방심하지 말라. 해제란 생사를 영원히 끊어야만 해제이니, 오늘이 다시 시작하는 날이라 생각하고, 발심해서 새로운 결제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법회를 마친 스님들은 저마다 걸망을 메고 만행길에 올랐다. 그 일행 가운데 베스트셀러 ‘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국인 현각스님이 눈에 띄었다. 능인선원에서 하안거 동안 하루 다섯 번씩 108배를 했다는 그는 공부 많이 하셨냐는 질문에 ‘쬐금’이라고 쑥스러워하면서 “그동안 내가 해온 공부가 엉터리였고,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능인선원은 덕숭총림을 대표하는 비구 선원이다.
이번 하안거를 이끈 설정스님은 전날 저녁 기자들을 만나 하안거 풍경과 수행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님은 “덕숭총림은 구한말 경허스님이 다 끊어져가던 선풍을 일으키고, 만공, 혜월 등 큰 스님들이 그 뒤를 이어 선을 중흥시킨 곳”이라며 “전국 사찰의 조실, 방장 스님 치고 이곳 능인선원을 안 거친 이가 없을 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다”고 소개했다.
“규율이 매우 엄격하면서도 자유로운 것이 덕숭총림의 특징입니다. 여기 오는 스님들은 10~30년씩 화두를 들고 수행해온 분들이라 죽비를 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공부를 합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채소 기르고 풀 베는 등 노동을 강조하는 것도 여기 전통이지요.
안거 중 스님들 모습은 살얼음판 같아요. 크게 웃고 떠드는 것은 금지돼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죽을 일이 아니면 절대 밖에 못 나가고, 말을 많이 해선 안 되고, 음식은 아무 때나 못 먹고…. 석 달 간 신문, 잡지, 라디오, TV, 휴대폰도 금합니다. 이번 능인선원 하안거에는 스물 다섯 분이 참여했는데, 딱 한 분, 세르비아 출신 외국인 스님이 장이 녹아내리는 큰 탈이 나서 중도에 빠지셨습니다. 참선하고 앉은 방석에 피가 흥건히 고이도록 고통을 말하지 않고 견디다가 결국 수술을 받으셨지요.”
왜 이토록 치열하게 수행하는 것일까. 스님은 “수영을 못 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는 없다”며 “안거는 세상을 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구제할 지혜를 얻기 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수행과 선의 본질을 일러주는 ‘철수개화’(鐵樹開花)와 ‘화중생련’(火中生蓮)이란 말을 숙제처럼 던졌다. “쇠나무에 꽃이 피고 불 가운데 연꽃이 피는 도리가 불법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이 선입니다.”
그 날이 언제일까. 하안거를 마치고 산문을 나서는 스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런 질문이 일어났다. 수행은 스님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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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오미환 기자 mhoh@hk.co.kr
| [르포] 하안거 해제일 수덕사 능인선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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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하안거 해제일 수덕사 능인선원 풍경
<경향신문 2006/8/9/수/종합1,문화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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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안거 해제일인 8일, 90일간의 수행을 마친 스님들이 산문을 나서기에 앞서 설정스님(왼쪽)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있다. |
둥그런 여름달이 서해바다를 비추는 8일 새벽 2시, 덕숭산 꼭대기의 정혜사 능인선원은 깨어난다.
산 아래 수덕사에선 서늘한 산기운을 따라 목탁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잠에 든 우주만물을 깨우며, 도량을 정화하는 도량석(道場釋)이다. 나지막이 시작된 목탁소리는 한껏 높아졌다가 서서히 덕숭산 어둠속으로 잦아든다.
능인선원 선방 스님들의 하루가 열렸다. 잠길에서마저 화두를 꼭 들었을 스님들이다. 이날은 하안거(夏安居)를 마무리짓는 해제일. 스님들은 지난 3개월 동안 선방에 들어앉아 화두만을 참구(參究)했다. 능인선원의 선풍(禪風)에 부끄럽지 않아야 했다.
능인선원이 어떤 곳인가. 시퍼렇게 날선 선풍을 자랑하는 덕숭총림의 대표선원이다. 꺼져가던 한국 근세의 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선사와 수월 혜월 만공 고봉 금오 혜암 벽초 설봉 등으로 이어지는 선(禪)의 터전.
만공스님이 ‘금선대’라는 띠집을 지으며 시작된 덕숭총림 선원의 역사는 100여년에 이른다. 능인선원이 첫손에 꼽히는 비구선방이라면, 견성암선원은 최고의 비구니 선방.
비구니 법맥을 이어낸 법희스님, 개화기 신여성운동가로 불문에 귀의한 일엽스님 등의 선지식을 배출하기도 했다.
‘禪之宗刹(선지종찰)’ ‘東方第一禪院(동방제일선원)’이란 편액에 걸맞게 능인선원의 하안거는 철저했다.
보통 새벽 3시 도량석과 함께 하루 일과가 시작되지만 능인선원은 2시에 불을 밝혔다. 공양시간, 보행 등 잠깐의 시간 외에는 밤 10시까지 수행정진이 진행됐다.
설정(雪靖) 덕숭총림 수좌스님은 “능인선원의 특징을 들라면 꼭 2가지를 꼽는다”며 “하나는 딴 곳보다 1시간 일찍 시작하고 1시간 늦게 하루를 맺는다는 점,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울력을 많이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일을 중요시하는 것은 덕숭문중 수행가풍의 한 특징으로 2대 방장을 지낸 벽초스님의 ‘선농일여(禪農一如)’에서 굳어졌다.
이날 오전 7시 소나무 숲을 병풍 삼은 능인선원의 문이 석달 만에 열렸다. 걸망을 멘 스님들이 마당 가운데의 아름드리 보리수 밑을 지나 산길을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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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인선원에서 하안거를 한 베스트셀러 저자 현각스님은 “공부는 잘 하셨느냐”는 물음에 “매미소리를 잘 들었다”며 미소지었다. 또다른 스님은 그저 빙그레 희미한 웃음만 슬쩍 보인다.
9시가 되자 수덕사 대웅전에는 덕숭총림 선원들에서 수행해온 200여명의 스님들이 모두 모였고, 해제법회가 열렸다. 원담 방장스님은 해제법어를 통해 “해제란 생사영단(生死永斷)을 해야만 해제이니, 오늘이 다시 시작하는 날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결제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황벽 선사는 ‘한 차례 추위가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코를 찌를 매화향기 어찌 얻으랴’ 했느니라”며 “방심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이날 조계종 산하 전국 94개 선원에서 모두 2,319명의 스님들이 일제히 해제법회를 갖고 산문을 나섰다. 이제 세상 온 천지를 선방으로 삼은 것. 모든 것을 버려 모든 것을 얻는 마음밭을 차근차근 갈아가는 만행의 새 시작이다.
〈수덕사|글 도재기·사진 이상훈기자 jaekee@kyunghyang.com〉
| 설정 수좌스님 “참선은 종교 초월한 깨달음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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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樹開花(철수개화), 火中生蓮(화중생연). 쇠 나무에서 꽃이 피고, 불 속에서 연이 자라난다. 이런 도리가 바로 선(禪)이자, 불법(佛法)의 요체다.”
설정(雪靖) 덕숭총림 수좌(首座)스님(64)은 “철저한 공부가 중요하다”며 선 수행의 도리를 이렇게 정리했다.
스님들의 여름 수행정진인 하안거(夏安居) 해제를 하루 앞둔 7일 저녁, 충남 예산의 대한불교 조계종 덕숭총림(德崇叢林) 수덕사(修德寺) 황하루에서 설정 수좌스님을 만났다. 조계종 5대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의 대표선원인 능인선원(能仁禪院)의 하안거 이야기 등을 듣기 위해서다.
“수행자라면 방일(放逸)을 물리쳐야 한다. 육체가 방일하면 오욕에 빠진다. 쉽고 편하게 사는 데로 마음이 기운다. 편하고 쉽게 사는 것은 공부보다는 돈, 명예 등에 매달리게 만든다. 힘들고 어려운 것을 스스로 선택해 충실할 때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바른 수행자의 모습을 그려내는 스님의 말은 곧 충실한 삶보다는 그저 쉽고 편한 생활만을 좇는 속세인을 꾸짖는 듯하다.
하안거를 끝내고 만행을 떠나는 스님들에 대한 당부, 한국 불교의 현실 등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하안거가 해제됐다고 수도하는 사람의 자세를 접어선 안 된다. 수도자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 만행함으로써 힘들게 사는 세상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보고 듣고 느껴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스님은 “한국 불교도 해이해졌다”고 평가한다. 백장선사의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의 근기가 약해졌다는 것. 스님은 “사회의 발전에 따라 사찰의 의식주도 많이 편리해졌다”며 “옛 스님들의 말처럼 ‘춥고 배고파야 공부가 된다’는 것은 지금도 철칙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남북문제 등 이 땅의 살림살이에 대한 지혜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 미사일 발사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이 땅의 비극이 새삼 떠오르며,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이 땅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선 절대로 안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열강들은 통일을 원치 않을 수도 있다. 모두가 각성해 우리 스스로 자주통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을 모아야 한다. 원한의 마음이 아니라 동포애를 발휘하고 단합된 국민의 힘으로 전쟁을 막고 남북통일을 빨리 이뤄야 한다.”
최근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 허허로움으로 선을 찾는 일반인들이 늘면서 곳곳에 ‘선방’이 생겨났다. 설정 스님은 “참선은 승속(僧俗), 종교를 막론하고 인간의 정신적 건실함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더 대중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은 처음부터 잘 지도받아야 한다”며 “선을 잘못 가르치는 곳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한다. 스님은 “간화선이든, 위파사나든 방법이 중요한 게 아灸?어떻게 제대로 해 깨달음을 얻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수덕사|글 도재기·사진 이상훈기자〉
-설정스님은 누구-
설정(雪靖) 덕숭총림 수좌스님은 불교계에선 드물게 이판(수행정진)과 사판(행정 및 포교)을 두루 경험했다. 194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부친을 따라 수덕사를 자주 찾다 열세살에 출가했다. 현재 덕숭총림의 최고 어른인 원담 방장스님이 은사로 덕숭총림의 법맥을 잇고 있다.
| | 아흔날의 비움, 그리고 또 비움의 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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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날의 비움, 그리고 또 비움의 만행
<한겨레 2006/8/9/수/종교수행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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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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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안거를 마치고 정혜사를 떠나기 전 덕숭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선승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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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대지가 서해안까지 확 트여 보이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 정혜사 능인선원. 8일 오전 하안거(음력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참선 정진)를 난 ‘운수납자’들이 말 그대로 납색 옷을 입고 구름처럼 세상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이날 조계종 산하 94개 비구·비구니 선방에서 2319명의 선승들이 일제히 결제를 마치고 선방을 나서 만행을 떠났다.
결제를 난 선승들은 수좌(首座·선원을 이끄는 선승) 설정 스님의 지도로 매일 새벽 3시부터 밤 9시까지 짜여진 시간에 맞춰 참선해왔다. 이들은 지난 석 달간 산문 밖을 나가지 않은 채 텔레비전과 라디오, 신문, 잡지, 책을 보지 않았다. 세상과 통로를 단절한 채 오직 내면만을 마주한 것이다.
떠나는 납자들에게 덕숭총림 방장 원담 스님은 “해제했다고 해서 방심하지 말라. 생사영단(生死永斷·생사를 영원히 끊는 것)을 해야만 해제이니, 오늘이 다시 시작하는 날이라 생각하라”고 경책한다.
조계종 94개 선방 2319명 여름수행 하안거 해제 법웅 스님 앉아서 장좌불와 “산문 나선 오늘이 다시 시작”
바랑을 메고 정혜사 산문을 나서는 선승들의 발걸음에서 90일 동안의 살림살이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 무게는 무겁지 않다. 밤낮으로 다리를 꼬고 앉았음에도 마치 날다람쥐처럼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무언가를 쌓은 것이 아니라 비운 자만이 가능한 깃털 같은 가벼움이다. 8만4천근의 무게는 오직 화두일심으로 한 근이 되었고, 마침내 이 한 근마저 놓기 위해 백척간두로 나아갔다. 억겁 동안 굴레를 끊기 위한 대결단이 아닐 수 없다.
정혜사 선방에선 숭산 선사의 외국인 제자인 현각 스님과 오광 스님도 함께 했다. 오광 스님은 장이 흘러 내리는데도 이를 감춘 채 정진하다 좌복(방석)에 피가 흥건히 고인 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목숨을 건 정진이다. 그가 병원에 실려가자 선방에선 그의 좌복을 빼버렸다. 그것이 선방의 무서운 법칙이다. 그래서 육신의 죽음조차 무시한 채 생사를 끊고자 했던 그는 중도에 선방을 나온 것이 못내 절통해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도 선방 주위를 돌며 홀로 정진했다.
법웅 스님은 선방 대중들과 함께 정진하고, 잘 시간이 되면 만공선사가 살던 선방 밑 소림초당에 기거하면서 90일간 한 번도 바닥에 등을 대지 않은 채 잠을 자지 않은 장좌불와를 했다. 그의 눈빛에서 수마를 두 동강 낸 무사의 결기가 번득인다. 스승 숭산 선사가 열반한 뒤 정신적 지주를 잃고 방황하던 현각 스님과 오광 스님에게 “덕숭산이 그대들 은사 스님의 출가본사이니 이곳에서 결제를 나라”고 권유한 사람이 법웅 스님이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전통 선방에서 같이 하기가 쉽지 않던 이들은 “격의 없이 외국인 수행자를 한 식구로 받아들여줘 고맙다”며 함께 했다. 그는 점심 공양 뒤 논 밭에서 선승들이 함께 울력할 때 호미와 낫 등을 챙기는 고두 소임을 맡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엉터리다. 철저히 참회하고 초심으로 정진할 것이다.”
‘하버드대’라든가, ‘유명인’이라는 짐조차 벗어버린 듯 그들 역시 가볍기 그지 없다.
지난해 열반한 조계종 총무원장인 법장 스님을 시봉했던 진광 스님도 법장 스님의 갑작스런 열반의 충격을 딛고 90일 간 좌복에 앉았다. 그는 선방을 나서면서 “우리 스님이 좋아했던 히말라야에서 스님의 유품을 태워드리기 위해 티베트로 떠난다”고 했다.
떠남과 만남,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설정 스님은 진짜 수행은 지금부터라며 마지막 죽비를 내리친다.
“화광동진(和光同塵·진리의 빛 그대로 세상과 함께 함)하라.”
예산 덕숭산/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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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을 나서는 법웅 스님(앞)과 현각 스님(가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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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 덕숭총림은 만공 선사가 기틀다진 선불교 본가
충남 예산 덕숭산은 조선시대 사실상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선을 되살려 근대 선의 첫새벽인 경허 선사의 가풍을 잇는 곳이다. 수덕사의 산내 말사인 정혜사는 덕숭산 정상 부근에 있는데, 경허의 제자인 혜월 선사와 만공 선사가 머물면서 납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혜월이 51살에 부산 쪽으로 내려간 뒤 만공이 선원의 기틀을 다졌다. 옛부터 ‘사자의 포효에 백수의 뇌가 파열되며, 사자굴에 다른 짐승은 살 수 없다’고 했다. 만공의 문하엔 새끼 사자들이 몰려들었다. 보월, 금봉, 고봉, 벽초, 혜암, 전강, 금오, 춘성, 원담, 숭산 등 비구 선사와 법희, 일엽, 만성 등 비구니 선사 등 훗날 한국불교의 선을 일으켜세운 기라성 같은 법기들이었다. 따라서 신의 근본도량인 뜻의 선지종찰로 추앙된다. 또 덕숭산이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인도에 있었던 영산회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만공은 선승들을 발심시키는 데 천재적인 기지를 발휘하곤 했다. 당시 내로라 하는 선지식 다섯 명에게 견성을 인가받은 전강선사에게 “네 깨달음은 저 불목하니(절 머슴)보다 못하다”고 단칼에 내리쳐버렸다. 이 말에 분심이 격발된 전강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처절한 정진 끝에 사자후를 토했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시인인 김일엽이 처음 절을 방문했다가 밤에 화장실에 다녀와 자기 방을 못 찾아 여러 방문을 두드리자 다음날 대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 여성이 남자 생각이 나 밤에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렸다”고 공개망신을 주었다. 만공은 그런데도 일엽이 전혀 동요하지 않자, 그 자리에서 출가를 허용했다. 일부러 망신을 주어 그릇을 실험했다는 것이다.
덕숭가풍을 잇는 설정 스님은 “이제 좀 더 중생 구제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활발한 선풍이 덕숭산에서 어떻게 세상 속으로 불게 될까.
조연현 기자 | | | 선방에 문이 열리니 걸망엔 화두 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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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에 문이 열리니 걸망엔 화두 한아름
<문화일보 2006/8/8/화/종합1,문화23면><서울신문 2006/8/9/수/종합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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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3개월 하안거 해제… 누더기 승복 하나 걸치고 다시 만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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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2006) 하안거 해제일인 8일에 즈음, 조계종 법전 종정이 발표한 해제 법어 중 일부다. 여느 결제일이나 해제일의 법어나 마찬가지로 추상같이 서늘한 물음이지만 대답하기는 쉽지 않은 말. 이날 전국 94개 선원을 나서는 2319명의 비구와 비구니들은 몸이 선방을 나온다고 해서 마음까지 수행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법어에 담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가슴 속에 풀리지 않은 화두 하나 챙겨들고 백척간두에서 한걸음 내딛기를 계속해야 한다. 이팝꽃 흐드러지게 피었던 지난 5월 초, 선방에 들어온 지 정확히 3개월. 모든 것이 잠든 새벽 3시에 일어나 입선에 들고, 밤 10시 죽비소리와 함께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100일 가까이 계속해 왔다. 그 힘들다는 일주일간의 가행정진(잠을 2~3시간만 자고 정진하는 것)이나 용맹정진(잠을 전혀 자지 않고 정진하는 것)도 무사히 치러냈다. 그러는 사이 부드러운 봄날은 한여름의 무더위로 바뀌었고, 산사 주변의 신록은 입추(立秋)의 짙은 녹음으로 변화했다. 그 사이 공부는 얼마나 익은 것일까. 해인사 해인총림선원과 수덕사 덕숭총림선원 등에 따르면 7일 오후 현재, 선방에서는 이미 참선 일정을 끝냈다. 3개월간 앉았던 좌복(방석)과 이불을 빨아 말렸고, 개인 빨래도 마무리했다. 이제 짐을 싸느라 분주한 상태다. 선방에서 남은 일정이라고는 해제 하루 전날 밤 예정된 자자(自恣) 뿐. 자자란 안거가 끝나기 전날 스님들이 모여 안거 기간의 허물을 지적받는 의식이다. 현성스님이 쓴 안거체험기이자 수행일지인 ‘동안거’에 따르면 요즘은 남들의 잘못을 지적해주기보다, 그?자연스럽게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자자를 마치면 안거는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안거만 끝난 것이 아니라, 다음 안거에 한 철 참선할 선방까지 대부분 미리 정해둔 상태라고 한다. ‘방부’는 ‘다음 철에는 이 선방에서 수행하겠다’고 미리 원서를 쓰고 약속하는 의식. 전화 방부를 들이면 그 선원에서는 심사를 한 뒤 우편이나 전화로 입방유무를 알려준다고 한다. 입방이 허락되면 해제 다음날 바로 그 선방에 가서 입방원서를 쓰고 그 선원에서 지켜야 할 청규 등을 전해 듣게 된다. 그러니까 선방 스님들이 해제철 걸망하나 지고 물처럼 바람처럼 떠돌아 다니는 만행은 다음 한 철 수행할 선방을 다녀오고 난 뒤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선방 스님들의 다른 말은 운수납자(雲水衲子). 말 그대로 누더기 승복 하나에, 걸망 하나 짊어진 채 물처럼 구름처럼 떠돌아 다닌다. 그러나 모든 스님이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토굴 등에 둥지를 틀고 해제철에도 공부를 계속하는 정진파 스님도 있고, 자신이 소속한 절에서 불사를 하거나 포교를 하게 되는 스님도 많다고 한다. 어쨌거나 해제 예불을 마친 스님들은 어디론가 길을 떠난다. 가행정진 당시 스님의 등짝을 내리치는 장군죽비 소리로 쩌렁쩌렁했던 선방, 그 사이에도 한없이 울어 대던 풀벌레, 아침이면 산사 가득히 피어오르는 안개, 그 안개 사이로 부채살처럼 퍼지던 햇살을 뒤로 한 채…. 백양사 운문선원에서 한철 안거의 경험을 적고 있는 현성스님의 수행일지는 이렇게 끝맺는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물도 한곳에 오래 머물면 썩듯이, 사람도 한 곳에 오래 있으면 애착이 생겨 자기를 돌아볼 수가 없게 된다. 스님이 삼삼오오 걸망을 지고 백양사를 떠난다. 이제는 나도 어디론가 떠나야 할 때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
| 8일 夏安居 해제… 덕숭총림 수좌 설정 스님
8일 夏安居 해제… 덕숭총림 수좌 설정 스님
<한국경제 2006/8/9/수/사람들A35면>
"수영 못하는 자 물에 빠진 이 구할 수 없듯
지혜 열리지 않으면 남 도울 수 없어"
내내 고요하던 절집이 이른 아침부터 술렁댄다.
스스로를 산문(山門)에 가두고 정진하던 스님들이 석 달간의 공부를 마치고 떠나는 날.걸망을 멘 스님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기나긴 장마와 더위로 고생했던 날들,무엇을 얻고 가는 것일까.
활짝 핀 납자(衲子)들의 미소가 장마 끝 햇살 같다.
음력 7월 보름인 8일 오전 충남 예산군 덕산면의 덕숭총림 수덕사 총림선원이 있는 산내 암자 정혜사.이곳 능인선원에서 하안거(夏安居)에 참여했던 25명의 납자들이 아침 공양(식사)을 끝내자마자 일제히 짐을 챙겨 수덕사 법당으로 향했다.
하안거 해제(解制)법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날 해제법회에서 덕숭총림 방장 원담(圓潭) 스님은 "결제(結制)에 결제가 없는 것이 옳은 결제요,해제에 해제가 없는 것이 옳은 해제"라며 쉼 없는 정진을 당부했다.
깨달음을 얻어야 진짜 해제라는 뜻이다.
해제 전날 저녁 서울에서 찾아온 기자들을 만난 덕숭총림 수좌(首座) 설정(雪靖·66) 스님은 "선(禪)은 마음 속에서 모든 걸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한 방편인 화두는 일체의 못된 정신을 자르는 칼입니다.
그동안 살면서 든 습관과 분별을 자르는 도구지요.
그?퓐?하나의 화두를 잡으면 아주 철저한 마음으로,이번 생에 안 되면 다음 생까지 한다는 각오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방에 발을 들인 납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공부에 몰입한다.
신문·잡지·텔레비전·휴대전화 등 세상과의 끈은 모두 끊어지고 말도 많이 해선 안된다.
음식은 적게 먹고 일체의 편리함도 거부한다.
"선사들이 가장 경책하는 것이 방일(放逸)함,즉 노는 것입니다.
힘든 길을 스스로 선택해 걷는 것이 수행자의 길인데 주어진 모든 편리를 다 수용하고 살아서는 안 되지요.
그래서 정혜사 대중들은 새벽 2시에 일어나 예불한 뒤 참선을 시작합니다.
또한 능인선원에서는 일하는 것을 중시해서 채소 등은 자급자족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좌선 뿐만 아니라 일하는 가운데서도 화두를 놓치지 않는 동정일여(動靜一如)를 이루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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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납자들은 하루에 아침·점심만 먹고 저녁은 거르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을 많이 하고 한 끼만 먹는 사람도 적지 않아 안거 동안 보통 4~5㎏,많으면 10㎏씩 체중이 준다고 설정 스님은 전했다.
오랜 장마와 더위는 어떻게 이겨냈을까.
"정진하는 사람은 날씨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당장 수해로 고통받는 중생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진하고 깨달음을 얻어서 여러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인데 자기의 지혜가 열리지 않은 채 남을 돕는다는 건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지요.
속세의 어려움을 보면서 하루 속히 지혜의 문을 열고 조사관문을 타파하려는 원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덕숭산은 조선 말 불교가 쇠퇴하고 선맥이 끊어질 즈음 경허(鏡虛) 스님이 선풍을 다시 일으켰고 만공·수월·혜월·한암 스님 등 불교 중흥의 주역들이 살았던 곳.지금도 산 전체가 수행도량이어서 능인선원은 물론 비구니선원인 견성암,보덕사 등에서 220여명이 하안거에 동참했다.
설정 스님은 "선은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승속과 종교를 불문하고 해야 할 일이며 인간의 지혜를 계발하는 최상의 방편"이라고 강조했다.
"안거 중에 신자들이 와서 세상 걱정하는 것 들었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막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주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 역량을 비축하고 남북이 서로 동포애를 발휘해야 해요.
갈등은 불신(不信)에서 오고,불신은 진실하지 못한 데서 옵니다.
자기와 남을 속이지 말아야 해요.
모두가 진실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능인선원에서 하안거를 마친 벽안의 현각 스님(화계사 국제선원장·베스트셀러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은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됐다"고 했다.
참선공부를 하면 할수록 항상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된다는 것.그는 "저 먼 곳의 갈등과 시비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때 세계평화는 이뤄진다"면서 쉼 없이 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수덕사(예산)=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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